[교단일기] 소소한 일상이 모여 한 뼘 더 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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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소소한 일상이 모여 한 뼘 더 크는 아이들
  • 편집부
  • 승인 201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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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창동초등학교 특수교사)

“자, 준비, 출발!”
도토리 같은 2학년 아이들이 5명씩 줄을 맞추어 달리기를 한다. 이제 곧 승현이도 뛸 차례다. 나와 담임선생님은 승현이가 우리를 보고 코스를 벗어나지 않길 바라며 출발점과 도착점에 한 명씩 선다. 하지만 승현이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준비, 출발!”
출발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뛰기 시작한다. 어? 그런데 좀 전과 다르게 아이들의 수가 적은 듯하다. 살펴보니 승현이가 누군가와 함께 뛰고 있다.

승현이가 코스를 벗어나 도착점까지 가지 못할 것을 우려한 친구가 손을 잡고 같이 뛰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 친구는 달리기를 잘하는 친구인데…

1등을 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텐데… 제일 마지막에 함박웃음으로 함께 들어오는 두 아이.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의 마음 크기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넓은 듯 하다.

힘이 센 사람이 있으면 약한 사람, 속도가 빠른 사람이 있으면 느린 사람도 함께한다. 대부분의 집단이 정상분포를 이루기에 작은 사회라고 불리는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 곳에서 ‘도움반’이라는 교실의 특수교사를 맡고 있다. 특수교육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언제나 ‘통합교육’이다. 장애학생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는 사회로의 통합이기에 학령기 부터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통합교육이 서서히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생활 장면에 있음으로써 우리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것은 참으로 크다.

그러나 통합교육의 장면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위축되거나 일부러 과장되게 행동하는 장애학생, 신체적으로나 행동적으로 드러나는 특성을 경계하듯 바라보는 비장애학생, ‘착한 아이’의 강박으로 무조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도하게 친절한 아이들… 그리고 이 교실 장면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담임교사와 특수교사.

누가 먼저 다가갈까, 어떤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할까. 사람을 대하는 것이 교육이기에 뚜렷한 공식으로 제안되는 해결책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들의 본성에 있는 선한 마음을 믿고 조심스럽게 하루하루 만남의 장을 열어 본다.

오늘도 가을이 다가오는 공기로 상쾌함이 느껴지는 아침이다. 쿵쿵쿵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곧 교실 문이 열린다.

“1학년 교실에 가요!”

우리 경두가 왔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지만 또박또박 자기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애쓴다. 인사말보다 먼저 나오는 ‘1학년 통합반에 가자’는 경두의 말에 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가방을 정리하고 1학년 통합반 교실에 들어선다. 경두를 반기는 통합반 친구 한 녀석이 다가오더니 얼굴을 부빈다. 생글생글한 두 얼굴이 겹치는 모습이 오늘따라 더 예쁘다.

“경두가 귀여워요.”

계속 주위에서 맴돌고 살갑게 대하는 친구가 좋은지 경두도 연신 웃는다. 경두가 1학년 교실을 왜 그렇게 찾는지 알 것 같다. 나도 경두가 느끼는 그 온기가 느껴지니 말이다.

사실, 학교가 작은 사회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 감정적인 면이 더 크게 다가온다. 너그러운 사람이 있으면 뾰족한 사람도 있다. 따뜻한 말보다 차가운 눈빛이 더 익숙한 사람들도 있듯이. 우리 아이들이 모든 이에게 사랑받을 수 없고 상처받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곧 우리가 아이들의 통합교육이라는 울타리를 계속 지켜줄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관심과 일상이 어울려 교육이 되는 것을 믿고 함께 있는 우리 아이들을 응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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