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가 변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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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가 변했다고?
  • 한들신문
  • 승인 2020.01.1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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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광역여성새로일하기센터 취업상담사 거창고용·복지 플러스센터 근무 한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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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첫 기억은 남동생이 태어 난 날부터인 것 같다. 넷째 딸이지만 항상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그립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셋째 딸까진 그래도 참았었는데 내가 태어나고 아버지께서 골방에서 일주일 정도 나오시지도 않고 속앓이를 하셨다고. 아래로 남동생이 태어나고 고추밭에 터 팔았다며 나를 예뻐해 주셨나 보다 생각하지만, 우리 아버지께서는 아들딸 구별 안 하셨고 정말 인자하신 분이었다. 그에 반해 어머니는 딸만 낳아 면목 없다며 집안 어르신들 앞이나 동네 사람들 앞에서도 우리를 부끄러운 흠인 그것처럼 구박하시고 엄하게 대하셨다. 살림이 어려워 아버지께서 돈벌이 가시고 나면 너희들 그 때문에 멀리까지 가서 고생하신다며 역정을 내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초등학교에 가면서 남녀 차별은 항상 나를 화나게 했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 유대관계도 좋았던 나였던지라 지금은 반장으로 부르지만, 그때는 급장, 부급장이었는데 급우들 추천을 받아 투표하면 항상 내가 선두였어도 급장은 남자가 해야 한다며 부급장 직책을 줬다.

그렇지만 급우들은 통솔력에서 항상 우위를 차지하던 나를 따랐고 담임선생님도 무슨 일이든 나를 교무실로 불러다 시켰던 것 같다. 그때는 그 모든 일을 힘든 줄도 모르고 즐거이 했었는데 새삼 지나고 보니 그 또한 귀한 남자아이보다 만만한 여자인 나한테 시킨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러다 6학년이 되어 전교 어린이 회장을 선출하는데 직접 선출이 아니고 4, 5, 6학년 급장, 부급장들이 모여 투표를 했었다. 그 결과 2표를 받았음에도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전교 회장을 했던 친구는 어른이 된 어느 날 동창회서 만나 그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고 있었던지 미안함을 얘기했다. 시대가 그랬던 것이지 네가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애써 표현했지만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 날의 기분을 싹 지워주는 듯했다.

지난 주말엔 오래전부터 만나오던 고향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고 왔다.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인데 비슷한 시기에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아 가족 모두 함께 만나다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끼리 만나 살아가는 얘기도 하고 살아갈 얘기도 하는 아주 편한 모임이다. 두 사람은 벌써 사위를 봐서 진짜 어른이고 난 아직 어른이 아니라고 놀리곤 한다.

문경에 있는 리조트를 예약했는데 착오가 있어 금요일을 거기서 묵고 토요일은 숙소를 옮겨야 했다. 마침 문경에 사과 축제가 열리고 있어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저녁엔 가까운 수안보 온천으로 갔다. 숙소를 정하고 저녁 식사 후 온천탕으로 갔는데 우리보다 연배가 좀 높으신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그분들 말씀이 예전엔 여자로 태어난 게 무척이나 억울해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 맘껏 잘살아 보고 싶었는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보니 여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하셨다.

어른들한테 귀염 받고 자라서 해보고 싶은 거 맘대로 해보고 결혼도 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 사신다고 하시면서 크게들 웃으셨다. 그러면서 집에 혼자 있을 남편들이 젊어 큰소리치고 살아도 지금은 마누라 눈치, 자식 눈치 보며 집돌이 신세가 되어 빈집들 지키고 있다며 불쌍하다고도 하셨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우리도 공감하는 바가 있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하긴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다. 며느리가 아들만 둘인데 아이를 그만 낳는다고 해 손녀를 못 보신다고 서운해하는 어르신들도 계시니 말이다. 남녀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들 한다. 여전히 여자라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곳도 있지만, 시대가 많이 변한 건 맞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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