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마을역사연구회 마을역사 탐방 12 "개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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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마을역사연구회 마을역사 탐방 12 "개화마을"
  • 한들신문
  • 승인 2020.01.1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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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화 사람들은 동편과 서편으로 마을을 구분한다. 개화는 웅양-김천 3번 국도에서 약 1.8km 거리, 서편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마을이다.

개화(開花), 꽃이 피는 마을이다. 땀내기재(한출령)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은 봄에는 진달래꽃이 둘러싸고, 여름에는 연한 녹색이 나날이 번져 동네 전체가 푸른 숲을 이룬다.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다. 겨울이면 무성한 소나무와 소나무 위에 쌓인 눈꽃이 장관을 이룬다. 사람들은 사시사철 꽃피는 마을, 개화라고 불렀다. 뒷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산이 장미꽃잎처럼 첩첩이 동네를 감싸고 있다고 한다.

개항기 한국교회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부르는 박제원(1853~1935)은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적화면) 개화에서 출생하였다. 박제원이 태어나서 성장하던 그 당시,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때였다. 그가 살던 개화동에도 개항 이후 흉흉한 사회상이 전해졌고 사람들은 난리가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피난 방책을 찾게 되었다. 개화동에는 서울에서 내려와 박제원의 스승이었던 박중현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옹기를 구워 내다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마을 분들에게 옹기를 구웠던 터에 관해 알고 있는지 여쭤보았다. 마을 분들은 어른들로부터 전해 들었다며, 동네 들어오는 포도밭 가 전봇대가 있는 곳이 옹기 터라고 하였다.

박재원에 대한 문헌은 1850년 이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하지만 현재 마을 주민들은 박재원이나 박중현에 대해 전해들은 이야기가 없다고 한다. 마을 분들이 기억하는 마을 역사는 약 120년 정도에서 시작한다. 이병원 씨(90)는 개화마을에서 태어나서 지금껏 이 마을에서 살고 계신다. 그는 하성학교(1939년 개교) 1회 졸업생이다.

마을에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성씨는 알 수가 없다. 봉산 이씨는 금광에서 살다가 성재마을로 왔다가 증조부 때 개화마을로 왔다. 성재마을은 호식이(호랑이가 처녀를 물고 감)를 당해 사람들이 뿔뿔이 떠나게 되어 없어진 마을이라고 전해진다.

조선후기 옹기를 구웠다는 터
조선후기 옹기를 구웠다는 터

 

개화마을 할머니들의 삶

개화마을에 시집 온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보다 더 기막힌 이야기라고 한다. “지금도 생각하마 등골짝이 땀이 찰찰 나는기, 전부 진 다 뺀기라. 지금 와 시집 다시 가라카마 우리들 모두 아무도 안 간다카이.” 낯선 곳에 시집 온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밥 해 묵는기, 젤 힘들었다.”고 한다.

집집마다 식구는 많았고,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라 보리쌀을 찧어서 널어놔야 하고, 그것을 삶아서 다시 보리밥을 지어야 했다. 당시 사람들은 호롱불 켜 놓고 감자를 한 바가지 긁어서 보리쌀에 넣고 으깨어 밥의 양을 늘렸다고 한다. 아침이 되면 눈을 감고 보리쌀 한 한배기를 씻어 앉혀서 삶아 내면 시누이나 아이들이 학교 간다고 나선다. 그러면 아침밥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보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자식들은 컸고,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학교 간다고 나서는 아이들이 차비 달라고 손을 내밀면 줄 돈이 없어 아침마다 이집 저집에서 돈 꾸러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 쌀 한 되 값이 30원이었다. 쌀을 팔아 돈을 마련해야 했지만, 먹을 양식이 모자라 팔지도 못했다. 가을에 농사지어 나락을 내어 겨우 아이들 공부를 시켰다. 송아지라도 한 마리 낳으면 그것 팔아 등록금을 마련하였다. 개화마을 할머니들 이야기는 이 땅 여느 농촌 어머니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이야기
할머니들의 이야기

 

개화마을 고난사

1. 1950년 개화마을

개화는 지리적으로 삼봉산과 덕유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더군다나 마을이 큰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산과 산이 만나는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마을이다. 그러다 보니 6·25 때 인민군 본부가 설치되었다. 당시 동네에서 좀 똑똑하다는 청년들은 인민군들이 먼저 불러들였다. 몇 달간의 인민군 통치가 끝나고 국군이 들어오면서 마을 사람들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른 마을과 달리 개화에서는 6·25 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겪은 고초는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치유하지 못한 상처로 남아있었다.

 

2. 마을을 휩쓴 화마

전쟁이 끝난 후 19542월 마을에 큰 화재가 있었다. 마을 한 분은 시집온 지 사흘 만에 큰불이 나서 집이 다 탔다고 한다. 이말순 씨 집 아랫방에 세 든(방 하나를 빌려줬지 지금처럼 세를 받거나 그러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람이 잘못하여 불이 났다.

웃땀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초가집을 차례로 삼켰다. 다행히 아랫땀 몇 집은 불이 붙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랫땀으로 내려가 한 집에 방 하나씩을 얻어 지냈다고 한다. 식구가 많은지라 방 한 칸에 다 들어갈 수 없어 덕석을 깔아 놓고 자기도 했다. 더러는 살 곳을 찾아 미련 없이 마을을 떠나는 이도 있었다. 2월이라 추위가 가시지 않아 어서 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홍금연 씨는 그때를 생각하며 진저리를 쳤다. 짚으로 뒤덮인 지붕을 타고 불덩이가 훨훨 날아다녀서 물을 뿌릴 새도 없이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어 급한 마음에 신발도 신지 못하고 뛰어다녔다. 온 동네를 태운 불내금’(불이 탄 냄새) 때문에 입덧이 더 심해졌다고 했다. 또 다른 마을 사람은 불이 나서 먹을 것이 없으니까 뭐든지 탄내 나는 줄도 모르고 먹었다고 하였다. 시집온 지 사흘 만에 불이 났다는 마을 사람은 불이 나서 갈 곳이 없으니까 시숙, 시아버지, 신혼부부가 한방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그는 돼지새끼 매이로 모두 한방에서 자고, 지금 생각해 보마, 돼지새끼 같애. 방 하나에 한 식구가 오골오골 모이 가지고

태풍 루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마당
태풍 루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마당

 

3. 태풍 루사가 휩쓸었던 마을

2002년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루사는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남겼다. 개화 마을은 적나라한 재난 현장이었다. 태풍은 2002831일부터 경남 전역에 폭우를 동반 이틀 동안 퍼붓듯 내린 장대비는 지반을 약하게 만들었다.

, 와르르굉음과 함께 마을 뒷산이 무너져 내렸다. 산채 같은 흙더미와 나무가 덮치면서 도랑물이 범람했다. 마을길은 거대한 물길이 되어 집들을 휩쓸었다. 적화에서 개화마을이 태풍 루사의 피해가 가장 심했다. 냉장고 세탁기는 물론이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태풍 루사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을 때 사람들은 불이 나서 온 마을을 태웠던 때가 생각났다고 했다.

 

개화마을 어르신들의 해학

옛날 중신애비가 중신을 하며 소 코 끈다리가 석 짐이 된다.”고 했다. 소 코 끈다리는 소의 코청을 꿰뚫고 거기에 고리 모양의 나무를 끼는 코뚜레의 사투리이다. 소가 귀하던 시절 소코뚜레가 석 짐이 된다는 것은 소가 많다는 것이며 당시 부자를 지칭했던 말이다.

개화마을에는 동네 사람들의 별호가 있었다. 박태화 씨는 농사를 짓는데 모르는 것이 없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농민부장관이라 불렀다. 이봉균(이현재 부친)씨는 일 처리를 빈틈없이 한다고 하여 군수라고 불렀다. 마을에서는 서로 잘하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였던 것이다.

김해김씨 효렬비: 시어머니 열녀비 앞에 선 며느리
김해김씨 효렬비: 시어머니 열녀비 앞에 선 며느리

 

김해김씨 효렬비

개화마을 입구에 효렬비가 있다. 효렬비 주인공은 이병원 씨의 어머니이다. 이 비는 여느 효렬비와 달리 자식들이 어머니를 칭송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이 비의 김해 김씨는 친정이 돌담마을이었다. 당시 중신아비 말만 듣고 시집을 왔는데 남편 몸이 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자신의 팔자소관으로 여기며 몸이 불편한 가장을 모시고 알뜰하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잘 키워 적화 부자로 집안을 일으켰다고 한다.

개화마을에 절이 있다. 붓다선원은 201310월 말에 개원하였다. 이곳은 일반적인 절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숨보기 명상, 마음보기 명상을 통해 선정과 지혜를 얻게 하는 수행처라고 한다.

 

개화, 이름처럼 늘 꽃이 피는 동네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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