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도토리와 녹슨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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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도토리와 녹슨 못
  • 한들신문
  • 승인 2020.01.1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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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초 교사 최은정

학교 마룻바닥 공사를 하면서 나온 폐목 무더기가 금원배 선생님의 밝은 눈에 잡혔다. 2학기 때 닭장을 짓는 데 쓰면 좋겠다고 따로 챙겨놓으셨다.

드디어 동아리 첫날. 첫날의 활동은 폐목들에 박힌 못을 빼는 작업이다. 아이들과 장도리와 목장갑을 챙겨 학교 뒤 참나무 아래 그늘에 모였다. 둘씩 짝지어 한 사람은 나무를 잡고 다른 사람은 장도리로 못을 빼기로 했다. 처음 서너 번은 주춤거리더니 나중에는 제법 척척 못을 빼는 아이들도 보였다.

그런 아이들 사이로 눈에 띄는 두 아이가 있었다. 별이와 달이.

달이는 못을 빼는 것보다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에 더 마음이 가는지 자꾸 도토리를 하나씩 하나씩 주워서 내게 가져왔다. 아이들이 뽑아낸 녹슨 못들과 함께 달이가 주워온 도토리들도 플라스틱 그릇에 하나둘 모였다.

녹슨 못과 도토리라…….’

그 둘이 만들어내는 어울림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든다. 달이는 이제 장도리 고무 손잡이를 그릇 삼아 도토리를 주워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와서 내게 내밀며 도토리로 소꿉놀이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런 달이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데 별이가 숨 가쁜 소리로 나를 불렀다.

선생님, 선생님! 이것 보세요

뭔데 그래?”

별이가 불러서 가본 곳에는 연둣빛 철망이 있을 뿐 무엇도 잘 보이지 않았다.

여기요. 이거요. 빙글빙글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요. 이것이 땅으로 이어져 있어요. 엄청 신기하죠? 이거 뭐예요?”

덩굴식물이 말라죽은 줄기였다. 아이들이 못을 한참 열심히 뽑고 있는 동안 못을 뽑지 않고 돌아다니던 별이의 눈에 띈 덩굴식물.

다시 달이가 나를 불렀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보석이에요.”

달이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유리 조각.

엄청나게 반짝거리죠? 이쁘죠? 이건 정말 얼음 가시 같아!”

달이는 보석처럼 환하게 웃었다.

알 프로젝트는 생명의 소중함을 직접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 2학년 동아리 활동으로 기획한 것. 그리고 오늘 계획된 활동은 닭장 지을 때 쓸 나무에 있는 못 뽑기였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못 뽑기를 하지 않고 도토리를 주우러 다닌 달이와 덩굴식물을 눈으로 더듬어 따라가 본 별이의 눈에 떠오른 경이로움을! 분명히 달이와 별이도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계획한 활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찾아낸 자신의 방법으로.

내 안에서 몇 가지 앎과 물음들이 솟아올랐다.

 

아이들은 제 속도에 맞추어 스스로 궁금하면 배워가는구나!’

그렇다면 교사가 수업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교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까?’

가르친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깊이 품어보고 싶은 물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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