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들신문 창간 5주년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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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들신문 창간 5주년을 축하합니다
  • 한들신문
  • 승인 2020.06.1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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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소비자주권행동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생각납니다. 지역 정론지 한들신문의 묘목을 심은 지 벌써 5년입니다.

어떤 이는 시간의 공을 들이고 또 어떤 이는 재산을 보태고 어떤 이는 글로서 묘목에 물을 부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듯 온 마을의 정성과 노력으로 이제는 제법 비바람에 맞서고 버팀목을 떼어도 좋을 만큼 한들신문은 뿌리를 내리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이제는 너무 낡아버린 명제이기는 하지만 유효한 마르크스의 명제가 있습니다. 생산물이 가지는 공공성과 그 생산 수단에 대한 개인 소유의 이기성에 관한 모순이 그것입니다. 아마 이 모순의 가장 적확한 대상이 언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방송이나 신문이 생산하는 정보는 개인 사생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공공의 관심이나 공익의 관점에서 필요한 정보일 때 비로소 그 정보는 가치를 지니고 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익에 대한 가치 판단은 누가 할까요? 여기서 모순이 발생합니다. 사주는 사주의 관점에서 공익을 판단하고 정보를 유통합니다. 공공의 이익과 사주의 이익이 합치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서로의 이익이 배치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현실에서 누누이 목격했듯 언론은 단지 사주의 돈벌이 수단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나마 언론 선진국은 언론에 관한 법률이 까다롭고 처벌이 엄혹한 탓에 사적 소유의 불가사리 같은 욕망이 어느 정도 억제됩니다. (미국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동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개인 소유 언론들을 보면 이 모든 모순을 초월합니다. 공익과 사익 사이의 모순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사회와 모순이 되었습니다. 지극히 당파에 충실하면서도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듯 거짓말을 하고, 그 당파의 이익, 곧 사주의 이익을 위해 거짓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퍼뜨립니다. 인간 사회는 매우 복잡하며 다양한 이익 관계가 얽혀 있어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사회의 근본이 무너지게 됩니다. 사실에 기반한 보도로 신뢰의 기본을 만들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온갖 저열한 거짓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갈등을 폭증시키며 사회의 흉기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지역 신문 가운데 몇 안 되게 조합원에 의해 운영되는 한들신문은 소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유롭습니다. 그러므로 사주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에 충실하게 취재, 편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신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전문성을 갖춘 기자가 취재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제대로 된 신문이기도 합니다.

지식은 펼쳐진 단순 정보의 누적이 아닙니다. 지식은 시공을 초월한 다차원의 정보라 할 수 있지요. 농부는 사과를 제일 잘 가꾸고, 학자는 성분을 제일 잘 분석하고, 요리사는 다양한 조리법을 알지만 펼쳐놓으면 그냥 지식에 불과하지요. 그러나 그것이 통합되면 사과의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한들신문 또한 조합원과 기자, 거창의 지식인들이 어우러져 세상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수천 년을 번성하던 도도새는 이제 박제로만 남았습니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두려움이 없던 커다란 이 새는 천적이 사라지자 날개마저 도태시켜버렸습니다. 어느 날 섬에 굶주린 선원이 도착하자 날개 없고 두려움조차 모르던 이 새는 순식간에 모두 선원들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한들신문 앞에 늘 꽃길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꽃길만 있다면 한들신문은 도도새처럼 몰락하겠지요. 항상 언론소비자를 두려워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비상할 수 있도록 언제나 날개를 준비해야 합니다.

당파를 초월한’, ‘절대’, ‘모든 사람이 일치하는등등의 말은 입에는 자주 오르내리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편향을 가지며 단지 그 정도가 다를 뿐입니다. 74억 명의 인구 가운데 유전자가 일치하는 경우는 단 한 쌍도 없습니다. 일란성 쌍둥이조차 3% 이상의 유전적 차이를 지닙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신문은 만들 수도 없고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만든다고 해도 너무 재미없어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단지 자신의 편향이나 당파를 인지하고 언제나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정치적 성향으로 표현하자면 극우나 극좌는 피하자는 거지요. 왜냐면 사람의 수도 적을뿐더러 논리나 객관화된 사실조차 거부하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난 늘 글쓴이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단지 읽는 수고만 할 뿐이지만 언제나 나는 그 글로 지식이 깊어지며 삶의 즐거움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는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들의 용기와 정확함, 신속함으로 난 언제나 이득을 챙기기 때문입니다. 단지 보는 수고만 하면.

한들신문을 만드는 모든 분께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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