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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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들신문
  • 승인 2020.08.3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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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초 교사 금원배

기억

 

금원배

 

내가 어렸을 적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내 이름을 불러준 선생님

선생님의 목소리

 

이젠 내가 선생님 되어

아이들 앞에 서 있네

너희들에게 어떤 기억을 뭉클하게 안겨줄까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맨발로 운동장을 거닐고

눈 오는 날

밖으로 나가 눈싸움 하며 뒹굴고 놀았지

 

여름 날

뙤얏볕에서 물총놀이에 운동장을 누비고

수학 시간

밖으로 나가 꽃향기에 취해 놀았지

 

아이들이 자라서

어떻게 기억할까

너희들과 헤어지는 오늘

이름 한 번 불러본다.

 

올해 6학년. 이 아이들과 어떤 추억을 쌓을까? 추억으로 쌓지 못할 날이 있을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모두가 추억으로 쌓이겠지.

오늘 비가 온다. 어제 오후부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밤부터 내렸다. 아침에도 내린다. 5, 6교시에는 동아리 시간. 오늘 아이들과 시를 써보자. 아직 시 공부를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를 써왔다. 일기가 시였다.

 

빗방울이 제법 굵다. 비 오는 날 시골 학교 운동장은 조용하다. 빗소리가 잘 들린다. 빗방울이 땅을 때리는 소리다.

아이들은 나가고 싶지 않다. 맨발로 걸으려면 발에 흙이 묻는데. 전부터 맨발 걷기를 위해 자주 말했다. ‘맨발 걷기가 좋다라고. 모두 맨발로 나가자.

 

수희는 겅충겅충 뛴다.

선생님, 여기 뛰어봐요.”

모두 주춤주춤 할 때 수희는 머뭇거리지 않고 신발을 벗었다. 보란 듯이 맨발로 뛰기까지 한다. 수희가 있어 아이들이 맨발로 나섰다.

준영이는 우산을 놓고 그네를 탄다.

준영아, 비 오는 날 그네 타니까 어때?”

시원해요.”

어떻게 시원하데?”

마음이 확 시원해요.”

뜨거운 여름을 앞둔 날, 조용한 운동장에서 비를 맞으며 그네를 타면 마음까지 시원하겠다.

교실로 올라와 시를 쓴다. 일기장을 나눠주고 썼다. 아이들은 일기를 쓴다. 조용하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교실을 울린다. 아이들은 말도 안 하고 글을 쓴다.

글 다듬기까지 해 보기로 했다. 써온 글을 가지고 다듬어보자. 바로 다듬자 하면 힘들어서 왜 시키냐고 할 것 같다.

내가 나무로 뭘 만드는 걸 좋아해. 상자를 하나 만들잖아. 톱으로 자르고 못으로 박고 해서 끝냈어. 근데 이걸로 끝이냐. 손이 더 가야 해. 안 그러면 가시가 있어서 찔릴 수도 있고, 모서리가 뾰족해서 다칠 수 있지. 그러니까 다듬어야 한다는 거지. 만드는데 한두 시간 걸렸다면 다듬고 칠하고 하는 데는 그보다 더 걸릴 수가 있어. 다듬는 거 안 해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만드려고 하는 게 제대로 쓰이려면 다듬는 게 필요하지. 글도 마찬가지야. 안 다듬고 다 썼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내가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잘 나타나 있는지 보고 다듬으면 좋아. 내가 하려는 말을 제대로 하기 위해 다듬는 게 좋지.”

이리 말해놓고 수연이 글을 가지고 함께 글 다듬기를 한다.

 

비 오는 날

 

홍수연

 

아침에 비가 온다.

학교에 와서 자리에 앉았다.

비가 오는데 맨발 걷기를 했다.

할려고 하니 하기가 싫다.

모래를 걸었다.

모래를 걷는데 내 예상과 다르게 많이 안 아팠다.

걸으면 아프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수연이가 우산을 쓰고 내 앞에서 동무랑 손잡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한 손은 우산을 쓰고, 다른 한 손은 동무 손을 잡고. 교실에 있었으면 하지 못했을 일. 이것이 추억이지. 이게 수연이가 말한 재미가 아닐까?

아침에 비가 온다.’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생생하다. ‘비가 왔다가 아니라 비가 온다로 썼기 때문이다. 그럼 맨발 걷기를 했다맨발 걷기를 한다로 하면 어떨까? ‘학교에 와서 자리에 앉았다는 말은? 손으로 이 부분을 가리고 읽었다. 없어도 뜻이 통하면 빼도 좋다. 군더더기는 빼자.

걸으면 아프다는 게 어찌 아픈 것일까?

자갈 같은 게 있으면 아파요.”

재미있었다는데 어떤 게 기억에 남노?”

말을 못 하고 뜸을 들인다.

나는 수연이가 주현이랑 손잡고 가는 모습이 기억에 남던데. 지연이는 어땠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그걸 넣어 써보자.

수연이가 글을 고쳐왔다.

 

비 오는 날

 

홍수연

 

아침에 비가 온다.

비가 오는데 맨발 걷기를 한다.

할려고 하니 하기가 싫다.

모래를 걷는다.

모래를 걷는데

많이 안 아프다.

자갈을 밟으면 아프다.

주현이랑 진희랑 같이 걸어서 좋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쓰고

한 손은 손을 잡고 걸었다.

 

교실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밖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2학년들이 나왔다. 2학년 아이들 소리로 운동장이 다시 살아난다.

(2020. 6.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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