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단상]범접할 수 없는 인생의 무게를 영웅적 기색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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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단상]범접할 수 없는 인생의 무게를 영웅적 기색도 없이
  • 한들신문
  • 승인 2020.11.1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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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인 정애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동일시 감정이었다. 사실관계 기억은 앞뒤가 혼돈하여 정확하게 서술이 어렵다. 이것은 노화현상이다. 그저 분명한 것은 내가 먼저 손들지는 않았을 게다. 내가 찾아서, 자발적으로 그 모임에 첫발을 디딘 것은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그러니, 사실관계가 다름에 책하지는 마시기를 관계자(?) 분들에게 미리 요청하는 바이다.

어찌 되었든지...‘만드는 일을 부탁받았다.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고 결정하는 일에 이런저런 예측이 머릿속을 시끄럽게 했다. “아이고 부탁한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특히 금전적인 셈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랬고 책이란 결과물에 대한 십인십색의 안목이 다름으로 인해 야기될 구설수도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일을 동료들에게 사정을 해서 일정에 맞추어 달라, 이윤은 빼고 최소 인건비만 책정해다오 등등을 해결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랬다. 머릿속 시끄러움은 잠시, 답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마을 일은 무조건 협조다! 출간된 책은 거창문화원과 하성(적화)마을역사연구회가 함께 제작한 <적화차를 타는 사람들>이다.

하성(적화)마을역사연구회, 그러니까 우리 마을 현재까지의 과거를 기억 회상하고 정리하여 남겨두는 그 어마 무시한 일을 도모하시는 어른들을 그런 연유로 뵙게 되었다. 좋지 못한 버릇을 여태 고치질 못해 처음 인사 자리에 시간을 턱 밑으로 당도했다. 어른들은 이미 모두 도착하여 둥글게 자리에 좌정하고 계셨다. 아 죄송해라.... 살피니... 참석하신 어른들 한 분 한 분 모두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누구도 비슷한 용모가 없으셨다. 열 명 남짓 인원이 모이면 대게 비슷한 용태를 하신 분들이 있게 마련인데 한 분도 그러하질 않으셨다. 확고하여 묵직하고 강하여 굳건한 심성을 갖추신 아버님들이셨다. 이 땅과 이 세월을 버티고 견뎌온 바위처럼 견고하고 강직한 어른들이 그곳에 함께 계셨다. 가히 장군들의 회합이었다.

사극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쟁 한가운데 소집된 그 장군들의 회의였다. 소신 발언을 강하게 피력하는 어른, 잠자코 듣고 계시다 유효한 한 말씀을 보태시는 어른, 각기 다른 주장들을 아우르고 종합하시는 어른, 그리고 최종 의결을 존중하시는 어른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생의 무게가 실존하는 그곳은 내가 인생 초입의 학생으로 자리매김되는 자리이다.

하성지역 14개 마을 인생 좌장들의 회의는 매월 역사탐방, 역사강좌, 적화 옛길 걷기 등의 행사를 성실히 이어간다. 그리고 얼마 전, 동지洞誌 혹은 인생기록을 집중해서 수행하기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 사용이 없는 공간을 활용하자고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의결하여 수행하는 이 모든 일들이 젊은이들 없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 매번 이 회의를 참석하고 목격하면서 기분 좋은 상상을 한다. 그리고 희망을 본다. , 이 모임의 어른들은 생각을 능동적으로 하고 실행을 거듭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생명 있는 회의였다. 살아있음을 활동으로 증명하고 그 삶이 자기를 지키고 이웃을 이롭게 하는 보람이 있어 내일 더 행복해지는 노년을 살 수 있다면, 우린 인생 말년을 누군가를 기다리며 허비하거나 인생무상을 노래하며 허무하다 허무하다 탄식하며 우울하지 않을 수 있지 않나!!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 어른들은 여전히 현역이시라는 것이다. 크던지 작던지 농업에 종사하시며 직·간접으로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분들이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을 진마루도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내게도 곧 닥칠 노년의 일상을 현역으로 있을 수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려 흙과 바람과 태양의 조화와 맞닥트리며 매일을 긴장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노후의 일상이 있을까?! 작황이 더뎌도 소출이 들쭉날쭉해도 일희일비하지 않는 깊은 주름 속에 쌓인 내공을 이 어른들에게서 또 배운다. 인생 80에서야 알아지는 삶의 지혜가 더없이 견고해 보인다.

오래전 돌아가신 시인 구상 선생님의 허허허하시는 웃음에서 그 80 세월의 무게를 알아채고 얼마나 더 살아내야 그와 같이 깊은 호흡의 가벼운 웃음을 지닌 사람다운 어른이 될까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필설로 절대로 옮길 수 없는 시간 속 세월의 씨줄 날줄이 우리 모두에게는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도피하지 않고 나태하지 않고 미루지 않고 허둥대지 않고 그 옷감을 짜서 최후의 내가 입고 갈 수의를 완성해야 하는 일이 인생 말미의 최대 과업이라는 것. 나는 그 날이 오면 어떤 옷을 입고 웃을 수 있을까? 내가 목표한 대로 귀여운 할머니의 미소를 획득할 수 있을까?

하성(적화)마을역사연구회의 전 회장님은 신 회장님이셨고 현재 회장님은 최 회장님이시다. 벌써 시간이 흘렀다는 말이다. 책 때문에 불림받아 마을 신입 주민이 매월 회의에 특정되어 참석한다. 자랑이고 영광이다.

그 매월의 회의에서 뵙는 어른들의 기상을 난, 이렇게 읽었다. 구상 선생님 시의 한 구절이다.

영웅적 기색도 없이 그분이 홀로서 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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