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환경]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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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환경]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 한들신문
  • 승인 2020.12.1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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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조성사업운영위원장 신수범

엊그제 지붕 일을 어두워질 때까지 하고 있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연기가 올라왔다. 쓰레기 태우는 매연이었다. 몇 번 맡았는데 숨이 턱 막혔다. 이래서 몇 분 안에 의식을 잃는구나 하는 실감을 했다. 비닐을 태우는지 지붕을 타고 올라오는 연기는 몇 호흡 더 맡으면 균형을 잃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숨을 참고 더듬으며 내려오는데 그냥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길바닥에 내려오니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짐작 가는 집으로 가봤더니 대문을 닫아놓고 쓰레기를 태우고 있었다. 쓰레기 태우는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이 아지매는 늘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나만 태우요? 와 나한테만 이카요? 내가 젤 만만 한가비라.” 대문을 두드리려던 손을 내리고 돌아섰다.

십 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그 해. 마을에서 떨어진 과수원을 지나가는데 모퉁이에 무엇을 태우는 걸 봤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모닥불에는 고자배기 위에 농약병과 농약봉지가 타고 있었다. 과수원 주인은 모둠 자리에서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동네 아재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람이었는데 봐서는 안 될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 아재가 하는 말은 귀담아듣지 않게 되었다. 내 안에서는 늘 소리친다. ‘사람은 변해. 그때가 언제라도.’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아재를 만나면 그 장면이 지워지지 않았다. 내 기억 저 안에 저장된 그 아재에 대한 거부감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거나 엷어지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탓일까. 그 아제가 옳은 말을 해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기억이 방해를 하니 나도 괴롭다. 한 사람이 남긴 기억이 이렇게도 오래가다니. 그 아제가 농약병과 농약봉지를 태우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한겨울에 들길을 지나는 사람이 없으리라 믿고 불을 놓았을 것이다. 알면서도 볼을 놓는 결정을 한 것이다. 그렇게 작용하게 부추긴 마음은 어디에서 생겼을까. 단순한 이기심일까.

마당에서, 과수원에서 쓰레기와 농약병을 태운 것은 아지매, 아재가 잘못한 행위이다. 잘못한 사람들을 탓하는 게 맞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다그칠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웃기게 들릴지 모르나 이 모든 행동 결정의 기전은 전도된 가치관에 있다고 본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이 정도야 뭐 하는 서슴없는 결정을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세상이 불신케 만든 결과가 아닐까. 멀리 가지 않아도 구한말 이후 격동의 시기부터 지금까지 사회 지도층들의 부조리를 매일 보고 있는데 마당에서 쓰레기 좀 태우는 게 뭐 어때서. 보이지 않는 과수원 귀퉁이에서 농약병 좀 태우는 게 뭐 그리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그 아지매, 아재만의 잘못일까.

코끼리가 쓰레기터를 뒤지고 초식동물 똥을 분해하던 쇠똥구리가 사라지고 그린피스가 세계 곳곳에서 환경 보전을 외치고 있다. 이뿐이겠는가만. 환경오염 문제는 심각한 정도를 넘어서고 있지만 수단과 방법에 잘못되어도 결과만 좋으면 성공이라고 부추기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농약병에 라이터를 켠 것이 그 아지매, 아재만의 잘못일까. 내 집에서 나가는 쓰레기부터 분리수거해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생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지매들, 아재들의 인성 때문일까.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개인들의 잘못을 덮자거나 탓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은 규칙을 잘 지킬 준비가 되어 있다. 환경오염의 심각성도 이해한다. 환경오염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가치관이 바로 잡혀야 고질적인 환경문제도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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