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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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들신문
  • 승인 2021.03.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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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큰아들 예준이가 서울에서 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다. 둘째 아이를 아기띠로 업고 다닐 때니 큰아들 나이가 4세 정도였을 것이다. 유치원 근처 골목에는 작은 탱탱볼 뽑기 기계가 있었다. 한 번 뽑기 놀이 한 판에 100원을 투입해야 했다. 100원의 비용으로 꽤 오랫동안 탱탱볼을 갖기 위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동네가 신당동이었는데, 신당동에는 유독 그 낡은 뽑기 기계를 가지고 뽑기 놀이를 하는 게 낙인 아이들이 많았다. 울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번 뽑기를 해 본 적이 있는데, 다시 또 가고 싶어 했다. 아이 아빠는 늘 회사에서 집에 돌아오면 양복바지 주머니에서 동전들을 꺼내서 돼지저금통에 넣어두었다. 나는 차를 타고 그 골목으로 갔다. 어깨띠로 작은 아이를 안은 채 모아놓은 돼지 저금통을 들고서 큰아들과 그 기계 앞으로 갔다. 나는 돼지저금통에 있는 돈으로 예준이가 하고 싶은 만큼 뽑기를 하라고 하고 옆에서 같이 응원해주었다. 나는 그날 예준이가 뽑기에 쓴 돈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1200. 1200원을 가지고 신나게 놀고 난 예준이는 팔이 아프다며 집에 가자며 스스로 일어났다. 그날 이후, 예준이는 두 번 정도 더 가자고 했고 한 번 갔을 때의 뽑기 비용도 줄어들었으며 결국 시시해서 가지 않게 되었다.

뽑기 기계 근처에서는 엄마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혼을 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울면서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300원 정도를 쓰고 나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돈이 아깝다며 그만하라고 한다. 아이들은 더하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한다. 결국 아이는 혼나서 울면서 집으로 간다.

예준이가 뽑기 놀이 비용으로 쓴 돈 1,200원이 4세 아이에게 큰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1,200원이 예준이의 마음껏 해 보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도 가끔은 3,000원짜리 커피 한 잔이 내 마음의 허함을 달래줄 때가 있으니까.

아이들은 인형뽑기를 좋아한다. 만약 내가 어렸을 때 인형뽑기 기계가 있었다면 나도 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인형뽑기 기계를 어렸을 때 본 기억이 나질 않는다. 중고나라에서 중고 인형뽑기 기계를 파는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인지 아닌지 살펴보았다. 트럭을 빌려 아이 아빠와 가지러 갈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아이 아빠도 내 뜻을 따라 주었다. 칠곡에 있는 창고에서 15만 원에 파는 A급 중고 인형뽑기 기계를 발견하고서 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우리 기관에서 인형뽑기를 본 아이들의 흥분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에게 영어단어를 10번 적은 쪽지를 주면 인형뽑기를 한 번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집에서 이제는 가지고 놀지 않은 인형을 가지고 오면 12번의 기회를 주었다. 처음에 아이들이 영어단어를 적고 줄을 서서 인형뽑기를 신나게 했다. 지금은 인형뽑기 기계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은 그 기계를 처음 본 새로 온 아이들밖에 없다. 그 아이들도 실컷 경험하고 난 후 뽑기 기계를 의식하지 않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영어 스펠링이 붙여진 쿠션을 만들어서 뽑기 기계 안에 넣어 두었다. 지금은 그 기계를 영어단어 각인하는 수업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게 해주면 중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이나 부모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컷 해봤기에 마음의 갈증이 해소되어 다른 것에 더 관심을 쏟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커져서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께서 당신들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나에게 주셨고 나는 지금 문제가 될 정도로 크게 무언가에 중독되어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도 내 교육방식으로 인해 큰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개개인의 견해를 토대로 살아간다. 10단계의 부모란 그 토대들을 바탕으로 우리 아이들을 믿어주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부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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