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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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 편집부
  • 승인 2015.09.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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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근(야로중학교 교사)

학생들이 등교하여 수업 시작 전에 자기들이 가지고 온 스마트폰을 담임선생님께 제출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생들 스마트폰 중에 000탭이 제법 많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집에 카드가 도착했는데, 그 카드로 샀다고 한다. 카드를 보여 달라고 해서 보니, ‘여민동락’이라는 빨간 카드였다.

알아보니 ‘여민동락’ 카드는 경상남도에서 의무급식비를 경상남도교육청에 지원하지 않는 대신에 정말 지원해야 할 학생들에게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에서 실시하는 것이었다.

여민동락 홈페이지에는 ‘모두가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 받아 꿈을 키울 수 있도록 경상남도와 18개 시군이 학력향상을 위해 교육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카드입니다. 발급받은 카드는 EBS 교재구입비 및 동영상 강의, 온라인 수강권, 보충학습 수강권, 온·오프라인 서점 등에서 사용이 가능합니다.’라고 되어 있고, 초등학생은 40만원, 중학생은 50만원, 고등학생은 60만원의 포인트가 들어있다.

이 사업을 실시하면서 경상남도에서 발행한 선전 팸플릿에서 ‘서민자녀들은 빈부격차와 8배에 달하는 교육비 차이로 인하여 출발 단계에서부터 절망감을 안고 시작하게 됩니다. 서민자녀 교육지원을 통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이 사업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것이고, 각각의 주장에는 자기 나름의 근거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 사업의 출발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 두 가지 사업을 다 실시할 수도 있는데 의무급식을 꼭 깨야 하는가?

의무급식은 그냥 밥 먹는 것이 아니고 교육이다 등의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일단 이것은 제쳐두고 ‘과연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를 묻고 싶다.

우리 학교는 농촌의 소규모 학교로 전교생이 60명 정도 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러저러한 지원을 모두 합치면 약 절반 가량이 지원을 받는다.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부모님들의 평균소득을 보면 거의가 중산층 이하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우리 학교는 전형적인 ‘개천’이다.

위 논리대로 한다면 우리 학교(개천)에서 눈물 나도록 노력을 하여 나중에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이름 붙이는 ‘사’자 직업을 가지거나 권력의 한 축에 들어서게 되면 우리는 정말 좋은 교육을 한 것이고 학생들은 용이 되는 것이다.

과연 이런 교육이 교사도 행복하고 학생도 행복할까? 용이 되지 못한 학생들은 인생이 실패한 찔찔한 존재들이 되는 것인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된다는 것은 일단은 사회적 신분 서열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우리 직업에는 더 좋고 높은 직업이 있고 낮고 나쁜 직업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직업의 귀천이 없다, 직업은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깡그리 무시되는 것이다.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를 부추기게 된다. 개천에서 용이 되기 위해서는 개천의 모든 자원을 탕진할 뿐만 아니라 전 국민들로 하여금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 용이 되기 위한 제각기 자기 나름의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찾게 된다.

이것은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파괴하게 된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 사회는 용과 미꾸라지를 구분해 차별하는 신분 서열제를 깨거나 완화시키는 동시에 ‘개천 죽이기’를 중단하고, 개천을 우리의 꿈과 희망을 펼칠 무대로 삼자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용이 되려는 이들에게 뜨거운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는 말지라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모델을 공적 차원에서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모든 학생들이 오로지 사회적 기준의 성공(용)을 위해 ‘전쟁 같은 학교생활’을 살게 할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자기가 살고 있는 곳(개천)을 아름답게 꾸미고 미꾸라지들끼리 어깨를 맞대고 자기 삶의 터전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개천에서 개천을 위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고 그 개천에서 꿈을 키우면서 개천에서 더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을 장려하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사회가 정말 용이 되지 못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더 큰 행복을 주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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