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선)과도한 영문표기, ‘나만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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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과도한 영문표기, ‘나만 불편해?’
  • 박재영 기자
  • 승인 2022.02.16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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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항노화힐링랜드(healing land)’
‘빼제산림레포츠파크(leisure-sports park)’
‘감악산항노화웰니스(wellness/well-being+happiness+fitness)체험장’
‘승강기베스트밸리(elevator best valley)’

‘힐링랜드’, ‘레포츠’, ‘웰니스’ 등은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영문 표기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이런 영문명들을 쉽게 볼 수 있죠. 한국관광공사에서도 ‘웰니스 관광지’라는 지도까지 만들어 국민들에게 알릴 정도입니다.(거창의 감악산항노화웰니스체험장과 Y자형 출렁다리는 경남의 ‘웰니스 여행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거창의 많은 관광지, 혹은 공공시설이 외래어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한글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관광지나 공공시설을 왜 굳이 영문으로 표기할까요?
  거창군의 한 관계자는 ‘세련된 표현이다.’를 하나의 이유로 꼽았습니다. 공설운동장보다는 스포츠파크가, 승강기전문농공단지보다 승강기베스트밸리가 조금 더 세련돼 보인다는 것이죠.
  관련 법률에 따라 공식 명칭을 바꿀 수는 없지만 어감이 이상해 영어식 별칭을 붙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aT’, ‘EX’, ‘코레일(KORAIL)’, ‘K-Water’, ‘코가스(KOGAS)’, ‘캠코(KAMCO)’, ‘Sh공사’, ‘kepco’ 등 정부의 공공기관도 아마 이러한 이유로 과도한 영문 표기의 뒤를 잇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련됨’과 ‘과도한 표현’은 뒤로 하고 먼저 거창군이 지은 영문 표기가 맞는 표현일까요? 그래서 기자가 직접 미국인 친구 ㄱ씨에게 물어봤습니다. ㄱ씨는 미국 애리조나주 출신으로, 3년 전 거창에 왔습니다.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요.
“외국인을 위해 지은 이름도 아닌데 영어가 많이 들어가서 조잡하다. 만약 외국인을 위해서 지은 거라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단어가 전혀 조화롭지 못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위의 관광지 이름을 본 ㄱ씨의 총평입니다. 예시로 한 개만 깊게 들여다보면 이렇다고 합니다.
“‘거창항노화힐링랜드(healing land)’는 무슨 뜻인지, 어떤 장소인지 전혀 모르겠다. 장소에 ‘랜드’가 붙으면 굉장히 재미있고 신나는 곳을 뜻한다. 디즈니랜드나 서울랜드처럼”
  특히, 한 명칭에 대해서는 강한 톤으로 혹평을 했습니다. 어떤 명칭이었는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It sounds stupid. it sounds like they don’t know english”
  외국인의 눈에만 이상하고 한국인의 눈에는 세련돼 보일까요? 거창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하는 ㄴ씨는 “품격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실소를 자아낼까 걱정스럽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군 내 주요 시설이나 관광지의 명칭을 영문으로 표기하면, 품격 있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실소를 자아낼 것 같아 걱정스럽다. 위에 제시된 관광지의 수요층은 60대 이상일 텐데, 영어를 잘 모르는 고령층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인다. 순우리말이나 한자어로도 충분히 수요층을 매혹시킬 수 있다고 본다.”
  국립국어원도 무분별한 영문 표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인터뷰에서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상품명이나 TV에서 외국어, 외래어를 자주 사용할 경우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라며 “이는 우리말을 경시하고 외래어를 중시하는 고정관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우려했습니다.
  또 “한 나라의 언어는 나라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한글의 소중함을 잊는 것은 한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잊는다는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TV, 아이스크림 등 한글로 대체하지 못해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하는 영문명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영문 표기 사용은 오히려 한글을 위축시키기만 할 뿐입니다. 세련됨을 위해 영문 표기를 사용한다면, ‘영어는 세련된 언어’라는 인식으로 고착화될 수 있습니다.
  ‘창포원’, ‘수월리생활환경숲’, ‘책읽는공원’, ‘갈지마을 솔향기공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감악산물맞이길’ 등 거창에는 한글로 이름 지어진 장소가 많습니다. 거창 시민들은 이 같은 장소를 떠올리며 ‘세련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공서는 먼저 한글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시민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이 시민들로 하여금 한글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하는 첫 시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공식적인 문서에서도 ‘언택트(Untact)’는 ‘비대면’으로, ‘펜데믹(Pandemic)’은 ‘전국(세계)적인 유행병’으로 쓰는 날도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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