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선)있지만 없는 예산, ‘포괄사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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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있지만 없는 예산, ‘포괄사업비’
  • 박재영 기자
  • 승인 2022.04.2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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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사업비는 지방자치단체가 관행적으로 시·군의원의 지역구 민원 해결을 위해 항목을 정하지 않고 편성하는 예산이다. ‘재량사업비’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거창군의회 의원들은 통상 1년에 2억 원의 포괄사업비를 쓸 수 있다고 한다. 군의원들은 이 예산을 지역구 민원 해결에 사용해 왔다. 도로를 포장하거나 농로를 만들어 주고 경로당을 보수하는 데 쓴다. 다음 선거를 바라보고 선심성으로 사용되는 것이 관행이다.
  이 예산은 예전부터 문제가 되어 왔다. 예산편성권은 집행부의 고유 재량인 만큼 군의원이 마음대로 예산에 대한 권한을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집행부가 어디에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많은 군민들에게 이로운지 판단해 계획을 세운 뒤 사용해야 하는데, 포괄사업비는 이러한 절차가 모두 생략된다.
  특히, 포괄사업비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군의원 개인마다 사용하는 금액도 다 다르다는 게 전임 군의원들의 설명이다. 보통은 연 2억 원을 쓸 수 있지만 집행부와의 관계에 따라 더 많은 예산을 쓸 수 있기도 하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군의원들이 포괄사업비를 더 얻어내기 위해 집행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의사결정 과정이나 예산 심의 과정에서 견제와 감시하는 역할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집행부 입장에서도 곤란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집행부 고유 의무인 예산편성권을 군의원들에게 넘기는 것으로, 향후 책임소재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있지만 없는 예산’인 만큼 모든 책임은 집행부가 져야 한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포괄사업비 집행 과정에서 수의계약을 통한 업체 밀어주기 정황도 발견돼 비난이 일기도 했다.
  지난 2012년, 행정안전부는 포괄사업비 편성을 금지하는 예산편성기준을 마련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했다. 구체적으로 사업의 목적과 용도를 명확히 명시해야 하는 사업예산제도에 비춰 포괄사업비가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훈령인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 제8조(사업예산의 운영관리) 2항에서는 ‘지방자치단체는 사업별 목적·용도 및 추진계획 등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아니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지방의회의원에게 일정액씩 예산을 포괄적으로 할당하여 편성·집행할 수 없다.’라고 명시했다. 결국 관행적으로 지급되는 포괄사업비는 법령과 지침 모두를 벗어난 편법인 셈이다.
  이런 여러 문제가 있지만, 아직까지 포괄사업비는 암묵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도, 심지어 동료 군의원들도 포괄사업비가 어디에 쓰였는지 알 수 없다. 한들신문이 거창군의회 의원들이 포괄사업비가 어디에 쓰였는지 점검하기 위해 문의를 했으나, 결론은 ‘알 수 없다.’였다.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해서도 이를 알아낼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관행이라 계속 유지해야 한다며 쉬쉬해서는 안된다. 군의원들의 쌈짓돈이 되어버린 포괄사업비가 투명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 필요한 사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집행부의 강력한 의지와 의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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