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화론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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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화론을 넘어서
  • 한들신문
  • 승인 2022.04.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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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용균

사람의 생각은 색안경과 같아서 같은 사물도 달리 보인다. 따라서 행동도 달라진다. 한국인의 마음을 지배하는 사상은 무엇일까? 역사학자들의 연구가 있다. “지난 20세기 한국인을 움직인 10대 사상”이라는 제목이다. 뜻밖에, 2위는 ‘사회진화론’이다. 공산주의나 자유민주주의보다 앞섰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끼친 영향이 크다는 말이다. 

  사회진화론은 경쟁과 승리에 최고 가치를 두는 사상이다. 한국 사회의 ‘일등 제일주의’와 ‘빨리빨리’ 문화가 대표적이다. 그것이 한국인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적지 않고, 행복 지수를 낮추기도 한다. 그래서 ‘느리게 살기’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히 이 정도라면, 굳이 외래 사상 영향력 2위를 차지할 이유가 없다. 더 근본적인 심각성이 있으니, 한국인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심각한 장애요소가 된다.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사상이다. 다원 진화론의 핵심 개념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으로, 19세기 중엽 법칙으로 인식되었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로 자처했던 마르크스도 자신이 “종의 기원”에 서문을 쓰겠다고 다윈에게 제안할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회진화론이 등장했으니, 곧 생물이 자연환경에서 생존경쟁을 하듯이 인간도 그렇다고 본 것이다.

  사회진화론은 강자의 논리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자연진화론이 자연의 법칙이듯이, 사회진화론이 사회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세계를 ‘문명’과 ‘야만’으로 양분하고, ‘문명=백인’이 ‘야만=유색인’을 지배하는 것을 ‘신이 준 신성한 사명’이라고 외치면서, 세계 각지를 점령해 나갔다. 요컨대, 사회진화론은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사상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센징=야만인’이라고 부른 것도 사회진화론을 빌린 것이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를 연구해 ‘오리엔탈리즘’이라고 개념 지은 바 있다.

  사회진화론이 인류사에 끼친 악영향은 지대하다. 단지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강자인 남자가 약자인 여자는 지배하는 것이 법칙이고, 강자인 자본가가 약자인 노동자를 지배하는 것이 법칙이며, 강자인 백인이 약자인 유색인종을 지배하는 것이 법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 속에서는 인권과 민주주의는 설자리가 없다.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것도 용인된다. 그러니, 사회진화론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사상이다.

  한국인들이 강한 사회진화론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것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이 사상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왔기 때문이다. 한국에 사회진화론이 처음 도입된 것은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 비롯되었지만, 일반화된 것은 20세기 초 양계초의 “음빙실문집”을 통해서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를 통해 세계를 ‘약육강식’, ‘생존경쟁’, ‘우승열패’의 사회로 인식하고, 살아남기 위해 실력을 기르자며 애국계몽운동을 벌였다. 식민지 시대에는 물산장려운동 등 실력양성운동이 계승되었다. 

  해방 후 사회진화론은 더욱 강력해졌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박정희 정권의 ‘개발 독재’였다. 예컨대, “수출만이 살 길이다!”와 같은 구호가 대표적이다. 그리하여 지금 한국인은 자신도 모른 채 온통 사회진화론에 세뇌되어 있으니,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보수와 진보, 중앙과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금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듣는데 이르고 보면, 차라리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듯하다. 이래서는 희망이 없다.

  애초 우리에겐 건강한 전통이 있었다. 사회진화론이 도입될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의 여성 지리학자 비숍 여사는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책을 남겼다. 그녀는 한국에서 본 ‘더러운 거리, 게으른 백성, 부패한 관리’가 한국인의 본성이 아니라, 이국땅 연해주에 이주한 한국인에게서 부지런히 일하며 함께 사는 한국인 본모습을 발견했다. 일찍이 김수영 시인은 비숍의 책을 읽으면서, “거대한 뿌리”라는 시를 남겼다. 지금 우리는 시인이 직관한 “내가 내 땅에 박은 거대한 뿌리”를 되새길 때이다. 그것은 경쟁과 승리가 아니라 인권과 공존의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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