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와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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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들신문
  • 승인 2022.05.2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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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용균

지방선거가 한창이다. 외견상 조용해 보인다. 정상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거가 일상이다. 또, 선거 하나, 정치인 하나에 민생이 좌지우지되는 것도 민주주의의 본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조용한 선거는 실질적인 민주주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징후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두 단계로 구분된다. 첫 단계는 민주주의 쟁취기다. 이때는 격정적이고 투쟁적이며 역동적으로 진행된다. 한마디로 혁명적이다. 프랑스 혁명 때도 그랬고, 한국의 민주화운동 때도 그랬다. 이를 통해 제도적 민주주의가 달성된다. 둘째 단계는 민주주의 성숙기다.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는 시기다. 개혁의 시기니, 율곡 이이가 말한 ‘경장’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때는 과거의 찌꺼기를 청산해 나가는 과정이다. 표면상 평화로우나, 수구 권력과의 갈등이 고조되며 때로 패배하기도 한다. 우리가 처한 단계다.

  이때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핵심에 속한다. 지역의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중앙권력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고, 또 그 뿌리가 강고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사가 길면 오히려 민주주의가 어렵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한국의 지방자치가 지체되는 이유다.

  토크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19세기 프랑스인이다. 그가 살았을 때 프랑스는 이미 프랑스대혁명으로 세계 민주주의의 본고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질곡이 심했다. 프랑스 혁명은 구세력에 의해 좌절되고 왕정이 복고되었으며, 7월 혁명, 2월 혁명 이후에도 프랑스 민주주의는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이때 토크빌은 미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민주주의 참모습을 발견했다. 그가 쓴 글이 지금도 고전으로 불리는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뉴잉글랜드의 ‘타운’ 제도에 대한 관찰이다. 타운은 작은 읍을 말한다. 그는 여기서 타운의 지방자치가 얼마나 이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세세하게 서술한다. 그리고 “타운에서 주민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며, 권력자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주인 노릇을 한다”라고 서술했다. 민주주의가 실제 작동하는 곳은, 지역 민주주의, 즉 지방자치이며, 그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임을 간파했다. 미국은 신세계였다. 당시 프랑스가 미국처럼 지역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한 것은, 역사가 길고, 그만큼 구제도(앙샹 레짐)가 강하며, 거기에 뿌리를 둔 수구세력도 완강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형보다 프랑스형에 가깝다. 한국은 역사가 긴 만큼 지역 구세력의 뿌리도 깊다. 일찍이 고려 시대 호족과 향리가 있었으며, 조선 시대 사림, 사족, 향반, 토반, 향리가 차례로 지역을 장악했고, 식민지 시대에는 ‘지역 유지’로 계승되었다. 그 강고함은 놀랄만하니, 중앙권력-수령-토반-향리-면장-이장을 통한 지역 권력의 작동 구조는 현재와 거의 유사하다.

  해결책이 있는가? 지방자치에 대한 적절한 역사 사례가 있다. 1894년, 동학 농민 전쟁 때 농민군이 점령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했다. 이때 정부에서는 갑오개혁에서 향청을 향회로 개편하여 지방의회로 전환하려는 개혁안이 제출되었다. 즉, 혁명적인 방법으로는 집강소였고 개혁적인 방법으로는 향청이었다. 지금과 같은 개혁의 시대에 향청에 주목하는 이유다.

  향청은 각 면의 덕망 있는 인사로 구성되었다. 좌수, 별감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수령의 전횡을 견제하고 향리의 부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향청이 힘이 있을 때는 민생이 나아졌다. 반면, 19세기처럼 향청이 수령의 하수인이 되면 부정부패가 횡행했다. 그때 거창 민란이 발생했다. 당시의 수령은 현재의 군수, 향리는 공무원이 해당되고, 향청은 오늘날 군의회와 비슷하다. 이로 미루어 보면, 지역 민주주의의 핵심은 의회의 강화에 있는 셈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우선 과제는 군의회의 강화다. 군의회의 강화란 군 행정에 대한 견제력을 말한다. 의회의 본질적 기능이자, 주민이 권력자에게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하여 복종을 강요할 방법이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 우리는 이미 후보의 다수에게 일을 시켜보았기 때문에 그 됨됨이를 알고 있다. 설사 일을 시켜보지 않았지만, 그들이 살아온 과거를 알고 있다. 누가 군수의 전횡을 저지할 것인가? 누가 자의적인 군 행정을 견제할 것인가? 일차적인 판단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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