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스타일로 본 지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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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스타일로 본 지역사회
  • 한들신문
  • 승인 2022.06.0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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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숙 지역사회문화연구소장

 

조용한 소읍이 시끌벅적하다. 바야흐로 선거 국면이다. 지방선거는 지방자치의 꽃이라고 한다. 지방분권과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창이라는 지역사회는 시민의 힘을 먹고 자라는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곳일까? 선거기간 내내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알렉산더 제프리(Alexander, Juffrey)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영역은 여론이나 매스미디어, 자발적 결사체로 이루어진 의사소통 제도가 있고 이것을 조절하는 선거, 정당, 공무, 법이라는 조절적 제도에 의해 유지된다고 하였다. 평상시에 의사소통 제도와 조절적 제도로 사회가 유지되는데, 이것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운동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런 측면에서 선거는 자율적 개인의 정치적 소망을 행사하는 것이다. 개인은 투표를 통해 정치적 소망을 표출하여 시민영역을 조절하는 성스러운 행위를 한다. 하지만 개인의 정치적 소망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사람들은 전략적인 행위로 정당을 선택한다. 그런데 과연 거창에 사는 우리는 투표를 통해 시민영역을 조절할 역량을 가졌는가?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연고주의가 판을 치는 이곳에서 정당을 통한 개인의 정치적 소망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가? 이런 질문으로 거창이라는 지역사회를 들여다보게 된다.

  지역사회는 그 지역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이것을 사회학에서는 ‘집단 스타일’이라고 한다. 집단 스타일은 개인만이 공유하는 문화가 아니라 너와 내가 다 함께 공유하는 문화적 문법이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 스타일에서 집단 스타일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조용한 가운데 거룩함을 더하는 찬송을 한다. 하지만 아프리카 교회는 신도들이 모여서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흥이 충분한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사랑을 담아 자신의 문화에 맞게 예배를 한다. 기독교 교리, 즉 하나님을 믿는 것은 차이가 없으나 하나님을 섬기는 스타일은 다르다. 

  정수복(사회학자, 작가)은 한국사회는 ‘유사가족의 문화적 문법’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사가족주의는 가족주의, 연고주의, 공동체 지향 의식이 결합한 형태로 나타난다. 다른 어떤 소속 집단보다 가족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는 가족주의, 이것이 확대되고 재생산되어 연고주의, 공동체 지향 의식으로 나간다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유사가족주의는 사적 이익을 넘어선 공익과 공공성에 대한 생각을 거세하여 시민의식의 부재를 가져온다.

  거창지역의 집단 스타일은 어떠할까? 한국사회의 문화적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거창 사회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연결된 연고주의에다 온정주의가 덧입혔다. 연고주의는 능력보다 연줄이 강조되고, 사적이어야 할 것을 공적으로 만들고, 공적이어야 할 것을 사적으로 만든다. 연고주의에 기초한 인간관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매우 강력한 신뢰와 상호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이념과 인간관계에 바탕을 두는 자발적 조직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지역사회에서 공적인 뜻을 같이하는 자발적 모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족주의가 쉽게 가족 이기주의가 되듯 연고주의는 쉽게 집단이기주의로 변질한다. 사회 전체와 공익을 생각하기에 앞서 자신의 이익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연고주의는 집단주의를 부추기고 집단주의는 수평적 인간관계보다 서열적 인간관계를 부추긴다. 

  연고와 온정으로 뭉친 사회는 시민사회로 성장할 수 없다. 시민사회는 권력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서로 알지는 못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서로가 헌신하리라는 믿음의 연대이다. 
  지역사회는 한두 단계만 거치면 연결된다. 도시는 혈연의 범위가 좁아서 사회적 영향력이 적지만 지역사회는 혈연의 힘이 세다. 덩달아 지연, 학연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선거의 진풍경은 출퇴근 인사다. 우리는 출퇴근 인사 잘하는 사람을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으로 뽑는 것이 아니다. 출마자들과 토론을 통해 정책을 제안하고, 누가 더 지역 정치를 잘할 것인가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출마자 공약, 능력, 인물 됨됨이 이런 것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동창회, 동문회, 향우회, 종친회, 갑계와 연결된 온정주의가 아닌 실력과 능력을 갖춘 우리의 대표를 뽑는 것은 바로 민주시민 역량이다. 과연 지역사회는 이러한 역량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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