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새미 등산기#3 오늘도 참 좋았습니다
상태바
한새미 등산기#3 오늘도 참 좋았습니다
  • 한들신문
  • 승인 2022.06.07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들꽃을 볼까, 바위를 볼까! 가야산과 만물상

산이 좋아 산에 오른 사람들, 거창의 산악회 ‘한새미’가 30년의 연륜과 등산 기록 1,340회를 찍었다. 이름처럼‘등산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이들의 발자취가 궁금하다. 30주년 기념문집『오늘도 참 좋았습니다』에 기록한 산행 일지를 따라서 한 달에 한 번 글 산행을 떠나 본다.   

 

 

야생화 천국 가야산과 기암괴석 만물상은 한새미 산악회에서 지금까지 90여 회나 오를 정도로 즐겨 찾는 산이다. 4월 중순경 가야산 가는 계곡길 양쪽으로 피어나는 <얼레지>는 가히 등산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강탈할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이다. 5월 중순 바위 틈새 습기가 많은 곳에 피어나는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예쁜 꽃은 바로 <설앵초>. 앵초과에는 원예용으로 키우는 <앵초>, 고산지대 음지에서 피는 <큰앵초>, 그리고 귀하디 귀한 <설앵초>가 대표격이다. 

  7월 말에서 8월 사이 상왕봉 바로 아래 넓은 평지에서는 보기 드문 야생화로 가득하다. 향기가 백 리나 간다는 <백리향>은 바위 틈새에서 군락으로 피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특히 이 꽃은 10~20cm의 작은 꽃이지만, 풀이 아니라 작은 관목이라는 사실. 본차이나 도자기의 무늬를 닮은 아주 작은 꽃도 있다. 꽃잎이 네 개가 있고 엄청 쓴맛을 지녔다 하여 <네귀쓴풀>이라 하는데 이곳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한라산에서 발견하였다 하여 <한라송이풀>이라 부르는 꽃이 이곳에 군락으로 피어난다는 것은 축복받은 가야산이라 할 만큼 귀한 꽃이다. 

  그 외에도 정상부 평전에는 바위채송화, 흰잔대, 산꼬리풀, 솔나리 등 야생화의 보고이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국립공원에서는 이곳 일대에 귀한 야생화를 보호하기 위해 출입 금지 구역으로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고 있을 정도이다.  
  
  토요일 오후, 한새미 회원들이 한 주일 만에 정기산행으로 만나면 반가운 인사와 함께 수다쟁이가 된다. 특히 여성 회원들의 수가 많으면 차 안에서부터 시끌시끌이다. 어느 날엔 쏟아지는 이야기 덕분에 해인사 IC를 지나쳐 고령까지 가서 되돌아온 날도 있다. 수다의 주제는 각양각색으로 그 주간의 핫이슈들. 가족 행사나 아이들 커가는 이야기, 건강 이야기 등등 온갖 얘기가 다 등장한다. 자신들 얘기하느라, 남들 얘기는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게 수다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을 터. 2018년도 만물상을 오르던 날의 뜨거운 주제는 “국립공원 내 고지대 금주령”이었다. 땀 흘리며 산에 올라 정상주 한 잔의 알싸한 맛에 길 들여진 애주가들은 “그럼 등산 가는 재미가 무어냐”라고 열을 올리는 반면, 두 손들어 환영한다는 여론도 만만찮았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때에 한새미는 두 패로 의견이 완전히 갈리었으니, 정상회담보다 더 불꽃 튀는 주제였다. 

  초여름이면 계곡을 품은 산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더욱 반짝이고 계곡은 은빛 물을 튕겨낸다. 전날에 비라도 왔을라치면 웅장한 물소리와 부서지는 폭포를 즐기며 시원하게 산행을 한다. 용기골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 등산길은 넓어지고 위험 구간마다 계단과 돌길이 놓여있어 걷기가 수월해졌다. 산그늘에, 산들바람에 시원한 산길. 하지만 쳐올리는 구간에서 땀은 비 오듯 흐른다. 쳐올린다고 표현하는 오르막길. 때로는 견뎌내기만 해야 하는 우리네 삶과 닮은 게 아닐까. 그저 묵묵히 걸으며 오로지 내 몫으로 버텨내야만 하는 길. 우리 삶의 치열한 한때는 땀이 비 오듯 하는 짙디짙은 녹음의 산을 오르는 것에 못지않다. 

  만물상 오르는 길, 삼거리 서성재를 지나 상아덤에서 휴식하고부터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향연에 감탄사 연발이다. 코끼리바위, 고래바위, 기도바위, 두꺼비바위, 쌍둥이 바위 등 이름있는 바위들이 즐비한 기암괴석의 전시장. 이곳에선 이름 없는 바위들도 제각각 걸출한 형상을 뽐내는데 어떤 날엔 마치 고개를 젖히고 웃는 듯한 바위 형상을 발견하며 혼자 웃기도 한다. 아무 걱정 없이 빙그레 웃을 날을 기다리는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고래바위에 오른다. 고래같이 커다란 바위 앞에 멋들어진 자태로 서 있는 소나무. 이 소나무가 없다면 감히 고래바위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소나무를 붙잡고 “앗! 무서워”를 외치며 네발로 기어 기어오른다. 아래를 보면 겁이 더 나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가 양쪽에 있다. 한번 빠지면 도저히 못 나올 것 같은 호랑이굴. 1천 미터 이상의 높은 산에 오르며 암봉과 누룩덤, 벼랑 끝 바위들을 아슬아슬 기어 다녔지만 만물상 고래바위만큼 아찔한 곳이 또 있을까. 그래서 “즐겁자고 오는 산에서 이렇게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느냐”라고 볼멘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어느 때부터였을까, 고래바위 옆으로 나 있는 안전한 탐방로로 다니기 시작한 것은. 이토록 무섭고도 이토록 짜릿함은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걷다 걷다 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능선 길, 산은 고지에 다다랐음을 알려준다. 저 멀리까지 시야가 트이고, 발아래엔 봉우리들이 끝을 이어가며 닿아있다. 끝날 거 같지 않던 오르막에도 잠깐씩 평지가 있고, 지나가는 바람도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우리네 삶의 고지는 어디일까. 아직 더 가야 할까 혹은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왔을까. 

  올라갈 때의 그 고단함, 무겁기만 한 두 다리, 숨이 턱에 차는 힘듦, 엉덩이까지 다 젖는 땀, 그리고 간간이 부는 골짜기 시원한 바람... 어느새 제일 기분 좋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되돌아왔을 때의 뿌듯함이 우리를 다시 산에 가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