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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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 한들신문
  • 승인 2023.01.0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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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숙 조합원

나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없었던 사람은 없으니까. 대학 마지막 학기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에 왔다. 추석 연휴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외가에 가셨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때 엄마를 잃었고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다. 
  우리 삼남매는 엄마 없는 세상을 꿈엔들 생각하지 못했는데 엄마 없는 세상에 던져져 있었다. 모든 것이 공허했다. 어딘가에 엄마가 있을 것 같았다. 방에서 부엌으로 우물가로 빨래터로 텃밭으로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엄마의 그림자도 없었다. 멀리서 엄마가 집을 향해 타박타박 걸어오는 듯하고 ‘숙아!’하고 부르는 듯하여 정신없이 달려가 보지만 엄마는 없었다. 사람이 이러다가 미치는구나!
  특별한 일도 없으면서 외갓집엔 왜 갔는지, 하나님은 엄마를 향해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왜 그냥 두셨는지, 단 1초만이라도 단 한 발만이라도 엄마가 비켜서 있었다면… 아무리 울부짖어도 아픈 머리만 더해갈 뿐이었다. 엄마를 잊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사를 했다.
  아무리 잊으려 애를 써도 엄마와 함께한 지난날들이 새록새록 살아오고 그립고 아쉽고 미안하고 죄송하고 서러워서 울고 또 울었다. 엄마라는 단어도 잊어야 했다.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도 발음할 수도 없었다. 숨겨 둔 서러움이 ‘엄마’라는 말을 타고 덮쳐 오기 때문이다. 엄마 있는 친구 집에 갈 수도 없었다. 친구의 엄마를 보면 엄마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갈 때면 언제나 엄마를 부르며 들어갔는데 부를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일단 엄마의 소재부터 파악했었는데 이제 불러도 대답이 없고 찾아도 흔적이 없다. 잃어버린 엄마를 잊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하루를 버틸 수가 없었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문드러지고 있었다. 
  잠결에 들리든 엄마의 도마질 소리, 엄마가 만들어준 쑥버무리와 술빵, 우리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다시는 엄마의 손맛이 밴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두 팔을 벌려 안아주고 엄마 냄새를 풍겨 주었는데 엄마 냄새가 너무 좋아 엄마를 안고 킁킁거렸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다. 엄마는 24시간 우리 삼남매 것이었는데 통째로 잃어버렸다.

  초등 친구 복선이가 엄마를 모시고 창성식당에 점심 먹으러 왔다. 철부지적에 애를 많이 먹여서 뵙고 싶은 분이시다. 친구엄마는 휠체어에 앉은 채 반갑다 손을 잡아 주신다. 뼈마디만 느껴진다. 여전히 서글서글한 모습에 딸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신다. 자주 오는 딸들은 안 챙기고 오지도 않는 아들만 챙긴다고 핀잔을 주자 다 사랑한다고 우스개를 치신다. 
  딸들은 살갑게 엄마의 점심 식탁을 챙기며 “천천히 드세요.”, “조금씩 드세요.”, “많이 드시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한다. 친구엄마는 고개를 연거푸 끄덕이신다. 두 자매는 연신 엄마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싶어 경쟁을 한다. 친구엄마는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딸들과의 시간을 즐기신다. 
  친구엄마를 모시고 우리 집엘 왔다. 친구엄마는 오디를 보자마자 “오디 좀 따라.” 딸들에게 명령하신다. “오디가 참 맛있다.”며 맛있게 드신다. “아이고, 저 머위 좀 봐라. 머위 대 껍질 벗겨 들깨에 볶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아깝다.” 하신다. 친구엄마는 한눈에 모든 것을 알아보셨고 가늠하셨다. 친구엄마는 다시 요양원으로 가셔야 한다. 딸이 넷이고 아들이 둘이어도 거동이 불편하면 집을 떠나야 하는 게 요즘 어르신들이다. 

  나는 요즘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유독 다니기를 좋아하셨다나. 나처럼, 소녀처럼 구경 가기를 즐기셨다. 엄마가 있으면 차로 모시고 가고 싶다는 곳 빠짐없이 다니련만,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도 사 드리고, 먹고 싶은 간식도 얼마든지 사 드릴 수 있는데 엄마가 없다.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말 ‘엄마 사랑해요’라고 천 번 만 번도 더 해 줄 수 있는데, 엄마가 없으니 무슨 소용인가?
  엄마는 종종 나를 ‘웬수’라고 하셨다. 항상 골골거리면서도 주문이 많고 까탈스런 딸 때문에 힘들어하셨다. 마음이 여리고 배려심이 많은 엄마가 못마땅해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그러나 자주 나한테서 엄마의 여린 마음이 나타났다. 대차게 일을 차고 나갈 수 없었다. 엄마도 나도 똑같이 ‘을’ 중의 ‘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엄마가 있으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우리 엄마여서 감사하다고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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