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리에 사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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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리에 사는 복
  • 한들신문
  • 승인 2023.01.2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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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민 조합원

서진아 이것 좀 봐! 논에 큰 마시멜로가 있어”/ “우리 가보자! 만져도 돼?”

아진아 이게 벼야. 벼 껍질을 벗기면 쌀이 나와”/ 우아 엄마 까보자! 먹어도 돼?

물 댄 논에서부터 서리 내리고 꽁꽁 언 논에 이르기까지, 서진·아진이네 가족은 김천리 각생들을 매일 만납니다. 집 앞에 논이 있어 일 년 내내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때마다 논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아이들과 함께 누립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집 앞의 논 뷰를 자랑하고 이따금 사진을 찍어 SNS에도 심심찮게 올리니 거긴 이름이 뭐야? 라고 묻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러게, 뭐지? 하면서 네이버 지도를 열어 각생들이라는 이름을 찾았습니다. 이름만 알았는데 집 앞 논이 확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상림리에서 십 년을 살았습니다. 그때도 자전거를 타고 각생들 한 바퀴를 도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들렀습니다. 읍 소재지에 살면서 가까이 논을 누릴 수 있는 삶이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사 올 때 좋아하는 곳 가까이 살 수 있어 기뻤습니다.

논을 보고 있으면 이사 참 잘 왔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집 안팎에서 각생들을 본 사람들 대부분이 앞에 들이 너무 좋다~ 이사 잘 왔네라고 감탄합니다. 들만 있어도 거저 좋은 집이 되었습니다.

하여, 살 집을 알아보려고 온 사람들에게 여길 보면 이 집에 꼭 살고 싶을 거예요라며 옥상에 데려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공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함께 누리고 싶은 보통의 마음이 있었거니와 집을 고르는 일에 있어서 논의 사계를 가까이 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김천리가 가진 큰 매력 포인트이자 경쟁력이라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그분들은 곧 김천리 주민이 되었습니다.

 

김천리에 온 첫 한 해 동안 못 보던 얼굴인데 어디 사느냐, 어디로 이사 왔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대구 오 년, 상림리 십 년 동안 받은 질문보다 횟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처음 몇 번은 어물쩡 저기요라고 손으로 가리키기만 했습니다. 그러면 어디 저 길가 쪽?’이라는 질문이 다시 돌아옵니다. 동네 분들의 관심 어린 질문을 받다 보니 좀 제대로 된 대답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또 마주칠 것 같고 제대로 대답하면 다음에 만날 때 저 처자는 길 가 쪽 삼 층짜리 집에 이사 온 사람이야라는 걸 기억하실 것 같았습니다.

한 동네에 사는 것만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사이, 김천리에서 비로소 동네를 만나는 기분이 듭니다. 최근에는 저희 동네 사시죠? 지나가다 봤어요’ ‘! 저희 같은 동네 사는데라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그럴 때면 제가 김천리 동네 사람에 한 걸음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어느 보통의 아침, 세 살 서진이가 언니들 학교 간다며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습니다. 매일 조깅하시는 할아버지께 여섯 살 아진이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니 '그래 어디 가니’/ ‘인라인 수업하러 가요’/‘그래 잘 다녀와’/ ‘라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우리가 김천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음을 어느 때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각생들과 서로를 기억하는 이웃, 김천리에 사는 복이 여기 있습니다.

2022 초여름, 아이들과 함께 각생들을 걷다가
2022 초여름, 아이들과 함께 각생들을 걷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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