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로 가는 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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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로 가는 길2
  • 한들신문
  • 승인 2023.09.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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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외가 동네 친구들 또한 읍내서 온 우리와 노는 일이 즐거운 것 같았다. 풍성한 이야기를 장착한 나는 그들 앞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곤 했다. 여름에는 물레방앗간이 있는 동막골의 느티나무 밑에서, 그리고 겨울에는 햇살 가득한 돌담 아래나 외가 사랑채에서 이야기 잔치를 벌였다. 물론 그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청자들의 숫자나 수준에 따라 이야기는 조금씩 변형되고 색채를 달리했다. 여자아이들이 많으면 왕자는 공주로 변하고 입는 옷과 신발, 그리고 관심사도 달라졌다. 먼 나라의 이야기일 때는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미지의 세계를 그려나갔다. 때로는 나 자신도 내가 만들어 낸 이야기 속 세계를 함께 떠돌았다.

  내 입을 따라다니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은 참으로 즐거웠다. 생각해 보면 그러한 모든 것이 내 문학적 자산이 되었고, 그리하여 글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글 쓰는 일이 소강상태에 빠지면 나는 외가를 찾곤 한다. 그 옛날 나의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은 이미 마을을 떠난 지 오래고, 오가던 길에 굽이굽이 흘러가던 강물은 직강공사로 아기자기한 곡선을 잃었으며 황금빛 모래사장도 강가에 늘어선 포플러 나무도 오래전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고 그 뼈대에 살을 붙이고 색깔을 입혀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던, 외가로 가는 길의 옛 기억들은 살아서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그 기억을 소환하면서, 다시금 글을 써 나갈 의욕을 일깨우곤 하는 것이다. 나의 글 속에는 그곳에 대한 기억들이 오롯이 배어들어 있다.

  어느 집이나 살아온 이야기를 쓰자면 소설책이 몇 권은 나온다고 하지만, 나의 외가는 역사의 한 정점에 서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 세대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외가 쪽 할아버지 세대는 대부분이 월북했다. 일제강점기의 유학파였던 그분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통해 식민지가 없는 세상, 평등하고 공정한 이상향을 꿈꾸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이상을 따라 고향을 떠났다. 민족해방을 인류애적인 이념으로 타개하고자 했던 그들의 순수한 열망을 짐작할 뿐, 그들을 다시 만나 직접 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다. 더구나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오랫동안 군사정권 통치 아래에 있던 냉전 시대에는, 이념적 갈등을 야기할 만한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팽만한 사회적 분위기 아래에선 또 다른 비극을 감수해야 하므로 더욱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만남과 기다림도 다 포기한, 분단 후 50년도 더 넘은 어느 날 느닷없이, 집안의 한 할아버지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해 왔다. 그것도 남쪽이 아닌 아닌 북에서... 그 바람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했던 오촌 아지매는 잠시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 나중에 아지매로부터, 북쪽의 이복형제들과 함께 금강산에서 그 할아버지를 만났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게, 그분들과의 간접적인 소통의 다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늘 그들이 살아왔던 삶의 족적을 그 어떤 형태로든 남겨야 한다는 부채감을 지니고 살아간다.

  나의 단편소설집 [비상하는 방]에 수록된 <흐르는 불꽃>은, 민족분단과 그로부터 연속되는 폭력의 시간을 겪어낸 가족사적 비극이다. 외가를 공간적 배경으로, 여성 주인공의 아픔을 그렸다. 마을을 싸고돌며 흐르는 달래강은 우리네 삶의 역사를 의미한다. <뿌에르또 바리오스> 역시 그 맥락 속에 있다. 그동안 말 못 했던 내 가족사의 한 부분을 변형된 모습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잊고 사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개인의 아픔을 되새김으로써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가는 자기 주변을 텍스트로 삼아 새롭게 직조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꾸며내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앞으로도 ‘외가’를 재료로 우려낼 이야기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여전히 새로운 작품들을 꿈꾸고 있다.

외가는 내 문학의 근원이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그 길을 나선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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