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의 끝, 거말흘산 봉수대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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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끝, 거말흘산 봉수대 발굴조사
  • 백종숙 편집장
  • 승인 2023.11.1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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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이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 확인
▲발굴조사를 통해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거말흘산 봉수대가 확인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거말흘산 봉수대가 확인되었다.

거창군은 웅양면 소재 거말흘산 봉수대 발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접경지역의 위급한 소식이나 지방의 급변 정세 등을 중앙에 전하던 통신수단이다.

  봉수대는 봉수를 올리는 시설로 국가의 정치·군사적인 전보기능을 하였으나 고종 31(1894) 갑오개혁을 계기로 봉수제도가 폐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거창을 지나는 금귀산 봉수대와 거말흘산 봉수대가 있었다. 남해에서 진주를 거쳐 합천, 거창읍 금귀산 봉수대에서 웅양면 거말흘산으로 이어지는 봉수는 내륙지역을 거쳐 남산(목멱산)으로 들어갔다. 거창군은 금귀산 봉수대를 발굴 조사하였으나, 거말흘산 봉수대는 지난 9월에 발굴조사를 착수하였다.(207, 11면 읍면통신원 참고)

  발굴조사단은 거말흘산 봉수대가 내지봉수(內地烽燧, 내륙지역을 지나는 봉수)임에도 연변봉수(沿邊烽燧, 국경이나 해안가를 지나는 봉수) 형태를 띤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연대(煙臺)는 불을 피우는 연조의 하부에 높게 쌓은 시설인데 주로 연변봉수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국경이나 해안지역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는 군사적 역할과 봉수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함이다. 이번 발굴에서 거말흘산 봉수대가 교통·군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드러났다.

   거말흘산 봉수대에서 연대 외에도 생활시설과 거화시설(불 지피는 시설), 오름시설(사다리 기능을 하는 돌계단, 보통 산 위에서 돌을 구하기 어려워 나무를 사용해서 계단을 만드는데, 거말흘산 봉수대는 돌을 이용하여 계단을 만든 것이 특징), 횃불이나 연기를 올리기 위한 물품을 보관했던 고사(庫舍, 창고), 불을 지폈던 흔적이 남은 소성유구(燒成遺構), 주거와 생활을 위해 필요한 수혈(竪穴, 지하창고) 등도 함께 발견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봉수군이 근무를 서면서 사용했던 도구와 백자발 6, 접시 2점이 온전한 상태로 포개져 출토되었다.

  거창문화원 구본영 학예사는 그동안 거말흘산 봉수대 추정지인 정상부에는 봉수대로 추정되는 유구(불을 피운 흔적)가 확인되지 않아서 봉수대인지 아니면 다른 용도로 단을 쌓았는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는데,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문헌에 나타난 봉수대임이 확인되었다. 금귀산 봉수대는 훼손이 심해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거말흘산 봉수대는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내지봉수임에도 연변봉수 형태를 띤 봉수대임이 확인되어, 학술적으로나 문화재로서 가치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거창군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를 바탕으로 향후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연차적 발굴을 통해 좀 더 정확한 성격을 규명해서 도지정문화재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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