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ROMA)의 준순이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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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ROMA)의 준순이⓶
  • 박혜원(소설가)
  • 승인 2024.01.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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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마〉의 클레오 /삽화 김녹촌
                                                                       삽화   김녹촌

 

  영화 <로마>에서 클레오는 첫 장면부터 집안을 청소하고 요리하며 설거지하고 빨래를 한다. 그녀는 그뿐 아니라 오고 가는 소피아 가족을 마중하고 배웅하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숙제를 챙기는 일에 이르기까지, 생활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모두가 잠든 밤에 집안 구석구석 불을 끄는 아주 섬세한 일까지도 그녀의 몫이다. 하루 일이 끝난 후 클레오가 머무는 곳은 옥상 가까이 자리한 좁다란 방이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녀의 발걸음에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녀는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보는 가신(家神)과도 같은 존재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준순이 생각을 했다. 외모조차 비슷해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물론 클레오처럼, 외가 식구들이 모든 것을 준순이에게 의존하고 살진 않았다. 그러나 집안 여기저기 필요한 곳에서 자리했던, 게다가 외가에 간 어린 우리까지 돌봐주었던 그녀가 떠올랐던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혼란스럽고 가난한 시대에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남의 집에 얹혀살았던 벙어리 준순이는, 그 상처를 감당하기에 너무 벅차서 스스로 소리를 잃어버렸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러면서도 준순이는 클레오처럼 늘 주어진 일상을 부지런히 살아냈던 것 같다.

 

  클레오가 입주한 가정은 겉보기에는 아주 정상적이고 모범적이다. 가장인 안토니오는 멕시코시티의 한 종합병원 의사이며, 부인 소피아와 31녀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의 외도로 가정은 깨진다. 가장이 떠나고 남은 가족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이 장면은 우리의 인생이 탄생과 죽음, 평안과 불안, 사랑과 배신 속을 오가지만, 절망 속에서도 달콤함이 공존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표현한다. 가장과 함께 번듯한 차와 튼튼한 책장은 사라졌지만, 그 속에서도 남은 사람들의 사랑은 계속되며 온기 또한 그대로 남아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클레오 역시, 임신 소식을 듣고 도망친 남자친구 페르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주어진 일상을 견뎌낸다. 임신한 클레오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자 혼자 남은 소피아는 그 손을 잡아준다. 또한 남은 가족들끼리 휴가를 가서 아이들이 파도에 휩쓸려갈 때, 헤엄도 못 치는 클레오가 거칠고 높은 물결을 헤치며 나아가 아이들을 구한다. 이 장면은 모순과 혼돈의 인생이지만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견뎌내는 사람의 향기와 징하고도 신비로운 삶의 힘을 잘 보여준다. 가장 없이 떠났던 피서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시금 평온해진 클레오가 미소 띤 표정으로 차창을 응시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면 각자 자기가 있을 자리를 새롭게 찾아가고 일상 또한 제대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모습은 안도감을 준다.

<로마>는 무채색의 흑백영화로, 화려한 색채 대신 소리들이 다채롭고 풍성하다. 바닥을 청소하거나 설거지하고 빨래하며, 문을 여닫거나 불을 켜고 끄는 소리... 그 소리들은 대부분 클레오가 남을 위해 내는 소리이다. 물론 클레오의 삶은 이 소리로 인해 고단하다. 그래서 막내아들 페페와 죽음놀이를 하면서 "이대로 죽는 것도 괜찮다고 했을지 모른다.나 역시 한 때, 눈을 감고 잠들면서 이대로 눈을 뜨지 말았으면 좋겠다 싶었던 순간의 아픈 기억이 있다. 준순이도 그러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자신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 깊은 한숨소리를 내면서 가끔 멍하게 먼 산을 바라보던 준순이의 시선이 떠오른다.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클레오가 아기 침대를 구경하러 갔던 날은, 멕시코의성체 축일 대학살의 비극과 맞물린다. 그리고 그날은 클레오의 아기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은 날이기도 하다. 아기의 아버지인 페르몬이 시위 참가자를 쫓아 가구점으로 와서, 평소 무술 훈련할 때 쓰던 봉으로 대학생들을 몰아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Amor es (영어로 'Love is')’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폭력을 휘두른다. 그 순간 양수가 터지고 아기는 그 운명을 다한다. 학살현장에 있던 이 아기는 어두운 멕시코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클레오의 몸 안에서 시작된 생명의 소리는 꺼져버린다. 뱃속의 아기가 죽은 뒤부터, 묵묵하게 고통과 상처를 견디어오던 클레오에겐 주변의 소리들 또한 모두 꺼져버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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