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는 결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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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결점들
  • 청년 정진호
  • 승인 2024.01.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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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에 한 번,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와 책을 읽습니다. 정확히는 저마다 책을 읽고, 다 함께 모여 나누는 자리입니다. 지난 모임에서는 어느 카피라이터가 썼다는 여행 에세이를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여행에 관하여,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과 사람에 대한 생각을 짧은 글에 담아 풀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잔잔하게 이어 가던 중, 어떤 대목 하나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쿵’ 하고 떨어지며 먼지를 일으키는 충격이었다기보다 별 것 아닌 듯 훅 지나갔는 데, 이상하게 자꾸만 되돌아가 상기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었달까요?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그가 말했어요. 하지만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 130쪽, 북라이프, 2016.

 ‘우리가 사랑하는 결점’이라는 말 앞에서 잠깐 침묵하여 머물렀습니다. 그대로 스쳐 보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얼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하나, 또 하나…. 사람이 생각났고, 그들의 결점이 떠올랐고, 곧 그것이 그를 완성하고, 그로 인하여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점이 곧 사람의 매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같은 책의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회인으로, 직장인으로 살며 자신에게 돌아오는 평가의 기준은 ‘유용’이었다고요. 그래서 여행에 서는 그것과 반대되는 ‘무용’의 의미를 찾게 된다고요. 이런 내용입니다.

 ‘평가의 기준은 언제나 우리의 유용함이다. 그러니 일상 속에서 꿈꾸는 사치는 이런 것이다. 햇빛 아래 맛있는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책을 읽거나 멍하니 먼 곳만 보거나 지나가는 사람들만 구경하거나 그러니까 있는 대로 여유를 부리는 텅 빈 시간, 한껏 무용한 시간. 

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 162쪽, 북라이프, 2016.

 햇빛과 맛있는 커피와 책과 여유라니! 생각만 해도 어딘지 행복해지는 기분입니다. 마음에 밀도높은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동시에 '유용'의 의미와 가치도 모르지 않습니다. 나의 노동의 의미를 잘 알고 행하는 일, 그로써 이루려는 목표와 나아가려는 방향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는 것, 잘 수행하고 성장하는 데서 느끼는 기쁨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요!
  분명 저마다 자신의 노동은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있고, 내가 들인 노력에 비례하여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세상은 복잡하고, 내게 주어진 일은 어렵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때도 있습니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곧 ‘결점’과 ‘무용’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완벽하기만 하다면, 모든 일이 뜻한 대로 이루어지고, 세상 모든 것이 곧기만 하다면 어떨까요? 당장은 좋아 보일 수 있어도 지금처럼 아름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부족함으로 누군가 그 사람다워지고, 그 사람의 부족함 덕분에 내가 다가갈 수 있고, 그와 함께하는 행위로 하여금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하니까요. 각자의 무용은 곧 타인의 유용으로 채워지고, 그것이 곧 우리를 이루고, 세상을 살아갈 만하게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며칠 전, 비장한 마음으로 출근했습니다. 누구나 바쁜 연말인 데다 얼른 해야 할 일이 있어 마음이 급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큰 보폭으로 자리에 도착했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의자에 앉으려 했습니다. “어, 어, 어…!” 하찮은 외침과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향한 채 앉은 나의 엉덩이가 팔걸이를 향했고, 바퀴는 굴렀고, 중심을 잃은 의자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주위에 있던 동료 몇 사람이 다가와 손을 내밀고 의자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웃음소리가 적막한 사무실을 메웠고요. 다시 일어나 제대로 앉았을 때, 후끈해진 건 얼굴 만이 아니었습니다. 비장하고 착잡했던 마음은 어느새 증발하고, 여유로운 마음이 피어올랐습니다. 그 몇 초 사이, 혼자였던 나의 하루에 동료라는 타인이 등장했기 때문이지요. 혼자라는 마음이 더 는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허당’이라 했습니다. 누구를 떠올릴 때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누구도 나를 생각할 때 떠올리게 되겠지요? 결점, 우리가 사랑하는 그 결점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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