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로 당선’? … 소수의 전횡 판치는 마을 이장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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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로 당선’? … 소수의 전횡 판치는 마을 이장선거
  • 한들신문 이종철 기자
  • 승인 2024.01.1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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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군 개봉마을 이장선거 파행으로 얼룩져
거수투표는 무기명 비밀투표 원칙에 어긋나
연임 제한 합의, 부정투표 등 쟁점 남아 재투표로 이어질까?
▲ 개봉마을회관 현관문에 게시한 선거공고문이 뜯겨나갔고, 쇠사슬이 감겨 있다. 파행적으로 진행된 선거 후유증을 짐작케 한다.
▲ 개봉마을회관 현관문에 게시한 선거공고문이 뜯겨나갔고, 쇠사슬이 감겨 있다. 파행적으로 진행된 선거 후유증을 짐작케 한다.

  마을 이장 자리를 놓고 주민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어 마을 공동체가 양분되거나, 소수의 전횡이 행해지는등 후유증이 깊어지고 있다.

  거창군 대동리 개봉마을에서는 작년 연말 마을 대동회를 개최하였다. 마을 대동회는 한 해 동안의 마을 살림을 결산하고, 새 이장을 선출하는 날이다그런데 지난해 1231일 마을회관 2층에서 열린 개봉마을 대동회에서 2016년부터 이장직을 계속 맡아 4연임 해 온 A씨의 연임 문제에 대해 A씨와 새로 출마한 B씨의 주장이 엇갈렸다. B씨의 주장에 따르면, 작년 개발위원회 회의 때 이장의 임기는 2년이며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하자고 다같이 합의했고, 당시 이장 A씨도 그 자리에서 참석했고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장 A씨는 금시초문이라며 부인하였다. 연임하겠다는 A씨와, A씨는 출마 자격이 없다는 B씨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어 선거의 효력을 두고 분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같은 양측의 갈등으로 연말 대동회에서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이후 개봉마을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 등록일을 15일로, 선거일을 이틀 뒤인 17일로 정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홍보를 위해 작은 현수막 5개를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수막에는 선거 당일 오전 11시까지라는 표시와 거수로 당선”, 즉 거수(투표)로 선출한다는 방침이 표기돼 있었다.

  이를 두고 개봉마을 주민들은 상식에 너무 어긋나는 행태라면서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개봉마을 주민 C씨는 거수투표는 초등학생도 알 만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맞지 않다.”면서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으로 재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거수투표는 투표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표현을 침해한다. 거수투표로 이장을 선출할 경우, 마을 구성원들로서는 현 이장을 반대하는 행동을 취하기 어렵다. 마을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등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많고, 주요 의사 결정에 배제당하는 등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밀선거는 투표과정에서 선거인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모르게 하는 선거방식이다. 비밀선거 원칙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원칙이므로 지켜져야 한다. 이는 공적 행정 조직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또, 당일 오전 11시까지라는 방침은 투표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 이날 시간제한이 있는 줄 상상도 못한 많은 주민들이 9시부터 10시 사이에 투표장을 찾았다가 개봉마을 현관이 쇠사슬로 굳게 잠겨 있어 되돌아갔다. 10시가 되자, 선관위는 쇠사슬을 잘라 문을 개봉하고 투표하러 온 주민들이 입장했다.

  그런데 또 다시 황당한 일이 벌어 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주민들은 투표장 내부에 50여 명이 입장하고, 외부 복도와 계단에 60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11시가 되자 투표장 출입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투표장 내부에 입장한 주민만으로 거수투표를 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항의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당일 투표장을 찾은 주민 들이 투표권자인지 확인하는 절차도 전혀 없었다. C씨에 따르면 물 건너 있는 사람들, 중앙리 사는 주민, 대평리 사는 주민 등 투표권이 없는 다른 마을 주민들이 다수 있었다고 폭로했다.

  투표 결과, 전년도 이장 A씨는 기호 1번을 부여받았으나, 후보등록일에도 선거 당일에도 나타나지 않아, 선관위가 기권으로 처리하였고, 기호 2B씨가 41, 기호 3C씨가 7표를 받아, 선관위는 기호 2B씨를 당선자로 선언하였다. 그런데 선거하는 과정에서 후보 발언 시간도 없었고, 심지어 기호 3번 후보는 김 씨인데, 이 씨로 표기된 채 진행되었다.

  이처럼 소수의 억지와 전횡으로 선거가 파행적으로 진행된 결과, 마을 선관위가 선출한 기호 2B씨도 마을 개발위원회의 추천서를 받지 못해 읍으로부터 임명받지 못하고 있다.

  마을 이장 자리는 공무원직이 아니어서 행정기관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관리감독 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이런 조건에서 마을규약마저 없다 보니 선거 때마다 소수의 전횡과 부조리가 반복되고 있다.

  거창읍 담당자는 마을 규약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마을대동회에서 하는 일에 행정이 직접 개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을 규약이 없으면 언제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적극적인 지도와 마을 규약 보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이번 사태를 겪으며, 주민 주도적으로 마을 규약을 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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