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나는 6학년 때까지 다닐 거야!”.
어느 날, 아이가 집에 연극 대본을 들고 왔다. 제목은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였다.
“네 역할은 뭐야?” 아이에게 물었다.
“응, 나는 자라야. 목이 긴 자라.”
대본을 열심히 뒤적여봐도 자라의 대사는 몇 개 없었다. 아이는 대사를 다 외워가야 한다며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음 속으로는 몇 개 안 되는 대사를 가지고 뭔 연습을 하나 웃겼지만, 일단 도움을 요청하니 대본을 들고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았다.
나는 아이가 대사를 해야 할 부분이 어딘지 알려주기 위해 할머니 역할도 하고 호랑이 역할도 하고 자라 친구들(송곳, 절구, 알밤) 역할도 연기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 연습을 시켜주었다. 대사도 몇 개 없는데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랴 내가 더 힘들었지만, 진지한 아이의 태도에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며칠 집에서 연습을 하면서 가족 모두 아이의 대사를 외울 지경이었다. 우리 가족은 저녁마다 “목이 긴 내 이름은 자라, 한번 물면 놓지 않지!”라고 노래를 불렀다. 연습을 하다보니 ‘손동작은 이렇게 하면 좋겠다’, ‘목소리를 더 크게 하면 좋겠다’라고 조언도 하면서 나름 집에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11월 20일, 거창문화센터에서 ‘제1회 거창 학생연극제’가 열렸다. 웅양초등학교 대표로 1~2학년의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가 무대에 올라간다고 하여 가족 모두 구경을 갔다. 할머니 역할을 맡은 2학년 친구와 호랑이들이 나오고 드디어 우리 아이가 나올 차례가 되었다. 초록색 모자와 옷을 입고 등껍질을 등에 메고 자라처럼 분장을 한 모습을 보자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마음이 찡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연극이라는 무대에 서 본 적이 없는 아이가 매일 대본 연습을 하고 긴장이 되어서 잠이 안 온다고 할 정도로 정말 기대했던 무대. 그 무대에 선모습만으로도 너무 감동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1~2학년 학생들 모두 참여하고 열심히 연습해서 만들어 낸 작은 무대가 엄청 크게 느껴졌다.
학생연극제에 이어 12월에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웅양꿈나무연극발표회’가 있었다. 1~2학년은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3~4 학년은 「별주부전」, 5~6학년은 「안녕하세요, 기호 3번 김석뽕입니다」를 발표했다. 학교 체육관은 많은 학부모로 북적였고 연극제 준비를 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연극제가 시작되고 거의 2시간 가량 연극을 보았 는데 지루할 틈 없이 몰입도가 높았다.
확실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작품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5~6학년의 「안녕하세요, 기호 3번 김석뽕입니다」를 볼 때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학생들의 연기력도 좋았지만, 40분 정도 되는 긴 시간 동안 모두가 하나되어 무대를 이리저리 바꾸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연극발표회를 준비하느라 학생, 교직원 모두가 얼마나 노고가 컸을지 짐작을 하고도 남았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물었다.
“웅양초등학교에 계속 다니고 싶어?”
“응, 나는 6학년 때까지 다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