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은 말한다 - 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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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은 말한다 - 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 #38
  • 역사칼럼
  • 승인 2024.02.0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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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섭 "이제 남은 소원은 명예회복, 그거 하나뿐이라요" (2)

서울대 법대-한인섭 교수

(지난 호에 이어)

시체를 파내니 눈에 불이 나지

  계엄령을 내리고, 불 질러가지고 와 볼 수도 없는 기고. 뒤에 한 보름있다가(군인이) “저 위에 올라가서 식량이 남았는가, 소 같은 게 하나 있는가? 뭐 돼지라도 밖에 나가 있는가? 그런거 가서 보고 가져오라카는 기라. 그래 자형이 우리 시체 찾으러 산에 가보자카는 기라. 그래 가보니까 사람도 구별도 못하겠고 엄두도 안나는 기라요. 그래 울기만 하고, 말을 못해. 까마귀는 와서 새카맣게 앉아가지고, 사람 가면 날아 가지. 그래 내려와서 그 뒤로 시신 찾도 몬하는 기고, 손도 대지 못하는 기고···.

  사람이 한 오백 몇 십명 죽으니까 핏물이 차지 않겠습니까? 핏물이 줄줄 흘러. 시방 지금은 지하수가 있고, 집에 수도가 있지만 그때는 순전히 개울물을 이용했던 기라. 개울물은 꺼림칙해서 보지도 못하고, 물을 사용 못하는 기라. 그리고 비가 오면 (핏물이) 더 내려오지.

  그래 국회의원한테 의논해가지고, 그걸 이장을 하라 카는 기라. 그래 3년 만에 이장하라고, 그래 인자 이장하는데, ‘나무 한 짐씩 지고 모두 와야 한다’, ‘쌀도 한 짐씩 지고 와야 한다카대.

  그 당시 우리 나이가, 뭐 스물 한살이지. 그래 인자 개울가에 나무 두 무더기를 모아 놓고, 그러고 나서 인자 가족들은 모아 가지고 시체를 파는 기라. 시체를 파니께, 뭐 눈에 불이 나지, 그 당 시 구별도 못 하는 기고.

  그래 뼈가 좀 큰 것은 남자, 뼈가 좀 작은 것은 여자, 그래 구분해가지고 두 무더기로. 그 당시 그런 걸 마치고난께 막 독이 올라가지고 피부에 뭐가 생겨. 그래가지고 사흘인가 천막에서 밤을 세우고···. 그래 인자 시체를 태우고 묘를 세운 기라요. 위에는 남자 묘, 밑에는 여자묘, (아이)는 한데 넣어 놓았기 때문에 구별도 몬하는 기고,(아이 무덤에는) 표석만 한 개 남겼어.

  그래 해놓고 난께, 인자 묘를 그래 놨으면 관리를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관리를 해야 하니까 우리 유족들이 돈 낸 거, 그래가지고 논마지기를 사가지고 운영하는데, 운영하려면 조직이 있을거 아닙니까? 말하자면 회장, 총무 그래 운영하니께···.

  그 당시 면의회가 있을 때거든요. 우리가 그러고 있응께 면 의회 의장이 도비(道費)를 가지고 석물(石物)을 해줄라 카는 기라. 시방은 석물을 할라 카면 돌 공장에 가서 사 가지고 세워다 놓기만 하면 되는데, 그 당시는 뭐 돌 공장도 없었고, 돌 깎는 사람도 없었고, 그 사람들이 다듬는 데, 석물이 엔간히 다듬고 나니 4·19가 났어요.

석물 운반하던 날 박영보 면장 죽임

4·19가 났는 기라, 4·19가 난 뒤에 한참 있다가 돌 (다 만들어진 석물)을 운송을 한 기라. 돌을 운송하려면 동네 사람, 이웃 사람 모아서 안거들어줍니까? 그러니께 유족만 온 게 아니고 신원 사람이 다 모여서 돌 운송해다 놓고 술 한잔 먹고 유족 아닌 사람은 가는 사람도 있고, 술 먹으면 자연히 이놈아, 저놈아 하고 질문 안합니 까? 누가 박영보 면장 데려다 물어보자. 우리한테 그러고 나서도 잘못했다, 사과도 안하고,”그런 말이 나오니께 뒤에 가서 천천히 하자. 오늘은 안된다.” 그러는 사람도 있고···. 그러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내려가삐리는 기라. 박영보를 데리러 간다꼬.

 

▲ 임 기 섭
                                                                       ▲ 임 기 섭

인자 뒤에 따라 내려가니까 사람들이 박영보를 잡아서 끌고 나오는기라. 간막이라 카는, 거 조그만 동네, 거기 경찰 서장하고 경찰이 한데 오는 기라. 그 당시 경찰 서장이 강 서장인데, 산청 사람이라요. 거창사건을 환하게 다 알거든요.

그 서장이 내가 거창에 부임 받아 들어와가지고,(박영보를 데리고 오라는) 그런 연락이 와서 데리고 왔다카는 기라. 서장이 그 이야기를 한께 고마 울분이(나서), 박영보, 죽일놈이라 대들어가지고, 경찰은 박영보 못 죽이게 하고, 유족은 막 죽이려 해싸코, 그리 하다보니까 불이 훤하이 나는 기라. 불이 확 나는데, 그래 박영보 죽였다고···, 박영보 죽인 다음에 불났던 모양이야. 그래 막 나하고 둘이서 안고, ‘아이고 이 일을 어찌 하나고 울고, 어떤 사람은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뭐 그때는 (박영보가) 사람으로도 안 보이는 기고.

그래 박영보 면장이 되도 안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 놓으니께, 경찰이 죽였는가, 구별도 못하는 기라. 그래 인자 서장이 말하기를, “이제 사람은 죽은 기고, 할 수 없는 기고, 집으로 돌아가이소.” ‘집으로 돌아가라카는 기라. 그래서 인자 오다가 지서 앞에, 시장 앞에 모여 앉아 우린 죄를 지어 놨다고 버티고 있응께 지서에서 술을 가지고 나와서 막걸리를 갈라 먹고 해라사정을 하는 기라. 그래 인자 올라오다가 막 울고불고 난리가 난 기라요.

우린 폭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또 군인이 한 차 왔어요. 군인이 한 차 오더니만(우리 보고) 폭도라 카는 기라. “우린 폭도도 아니고 사람이다.” “(군인이) 앉으시오.” 앉으니께 한참 있더니만, 일어서라카는 기라. “만세 삼창 한 번 하고 가소.” 군인이 그래 만세를 세 번 부르고 가라 카는 기라. 군인이 가라 카는데 안 할 수가 있소? 그런께 인자 집에 와서 보니까 잠잘 여가도 없고 그런 기라.

박영보, 그 사람을 죽여 놨으니 죄는 받을 긴데···. 인자 모이라캐서 지서 앞에 간께, 그날 또 비가 왔어. 간께 거서(모인 사람들 중에서) 주모자를 가릴라 카는기라. 뭐 가릴 수 있습니까?

앞장 선 사람도 없는 기제(거지). 그래 하나 둘은 몬 보내니까 전부 다 간다칸 기라. 결국 그당시 못 데려 간 기라.

서에서 또 나왔어요. “주모자 하나 둘 데려가면 우리가 알아서 잠깐 있다가 나올 깅께(거니 까), 살려주이소.” 사정을 해. 그 당시에 말하자면 4·19 나서는 뭐 무서울 게 있습니까? 우리가 세가 있던 택이지. 그래서 인자 우리가 몬 간다고 버팅긴기라. 안된다고 버팅긴께 집에 가라카는 기라. 그 뒤로 인자 지서 경찰이 와서 뭐 꽃같은 것도 앞에 놓고, 관리도 좀 하고, 자연히 우리가 힘이 실리는 기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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