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친절
상태바
어떤 친절
  • 월평빌라 신은혜
  • 승인 2024.02.05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출판사 민음사에서 운영하는 채널인데요, 책 이야기를 비롯해 출판사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엿볼 수 있어 다양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최근 그 채널에서 병렬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더라고요. 책을 읽을 때 한 권을 모두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동시에 여러 책을 읽어나가는 것을 병렬독서라 합니다. 생각해 보면 현대인은 누구나 이미 병렬독서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출판사에서는 직업의 특성상 한 권의 책을 만들며 참고도서 명목으로 여러 권의 책을 접해야 할 때가 많고,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개인적으로 읽는 책들도 있어 병렬독서를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책을 동시에 읽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그 채널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어요. 어느 책을 소개하며 한 사람이 원래 살던 터전을 벗어나 새로운 도시에서 살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스스로 이방인처럼 느끼며 도시의 익명성에 기대어 지내는 것이 때로는 참 좋은 순간이 있다고 했어요. 여기까지 들었을 때는 당연히 나를 아는 사람이 적다는 데에서 오는 해방감이나 자유로움을 이야기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기대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친절을 느꼈을 때, 그게 그 도시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기에 더욱 소중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더군요.

  무슨 이야기인지 너무 알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으니까요. 고향을 떠나 거창이라는 곳에 살며 느낀 그 생경함, 나를 잘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데서 오롯이 혼자라 느꼈던 순간들. 그리고 때때로 예상치 못하게 받았던 이 도시에서의 친절들. 그런 경험들이 저에게도 있으니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어떤 친절들에 대해서요.

# 종량제 봉투

  거창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같습니다. 집 근처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계산대에 서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여성분이 저에게 인사를 건네시더군요. 얼핏 아는 얼굴인 듯한데,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어요. 미안한 마음과 그분이 무안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저도 그분을 알고 있다고,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뜻을 담은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때 그분이 무심히 종량제 봉투 한묶음을 사서 저에게 주셨어요. 자취생한테 필요한 게 뭘까 그 잠깐 사이에 생각했는데, 다른 것보다 이게 가장 부담 없고, 가장 필요할것 같았다면서요. 이후에 그분이 제가 일하면서 뵌 적 있는 분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분도 저를 아주 잠깐 보셨을 텐데 그 짧은 순간 어떻게 저를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었을까요.

# 그냥 가요

  이번에도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며 있었던 일화입니다. 장을 다 보고 집에 가려고 차에 올랐어요. 차를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후방 센서를 아직 장착하지 않아서 후진할 때 조심히 운전하던 시절이에요. 그날도 나름대로 조심하며 운전한다 했는데, 옆에 주차되어 있던 트럭에 부딪혔어요. 차에서 내려 트럭 앞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하려던 찰나에, 트럭 주인되는 분이 다가오셨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남성분이셨어요. 제가 사정을 말씀드리자, 자신의 트럭과 제 차를 번갈아 보시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가씨 차가 더 망가졌네. 됐어요, 그냥 가요. 내 차는 표도 안 나네.”

# 초콜릿 한 통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근무하는 게 유난히도 지치는 날이었어요. 퇴근길에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며 스스로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미리 주문한 커피를 찾으러 카페에 들렀습니다. 자주 보던 아르바이트생이 저에게 견과류 알러지가 있는지 묻더니, 괜찮다면 초콜릿을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뜻밖의 선물에 금세 그날 하루가 기분 좋은 날로 바뀌었습니다.

 때로는 이유 없이 어떤 행운들이 찾아오기도 하죠. 그 행운으로 어느 날 어느 때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고요. 저에게는 이런 친절들이 그런 행운이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거창에서 잘 지냅니다. 저도 거창에서 이러한 행운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