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용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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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 용 되다
  • 표정숙
  • 승인 2024.02.0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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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이름은 시영이입니다. 나는 시영이네 집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무논에서 살았습니다. 무논 옆에는 조그만 웅덩이도 있고 오솔길도 있습니다. 그 오솔길로 학교를 오가며 유독 신명이 넘쳐서 웃고 뛰고 소리치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시영이입니다. 어깨에 붙어 있는 가방이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면서 덜컹 덜컹 소리를 지르고, 발름거리는 콧구멍은 얼마나 귀여운지, 톡톡거리는 발자국 소리는 또 얼마나 듣기 좋은지, 나도 모르게 시영이를 기다리는 버릇이 생기고 그 기다림은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내가 그렇게 바라던 용이 되어 옥황상제님을 모시며 시영이 내려다보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옥황상제님도 시영이가 뭘 하는지 내게 묻곤 합니다. 내가 이렇게 시영이를 좋아하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용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남들은 콧방귀를 뀌면서 놀렸지만, 나는 남몰래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며 꿈을 키웠습니다. 살이 찔까 봐 마음 놓고 먹지도 않았습니다.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타고 위로 솟구쳐 올라야 하기 때문에 민첩한 몸놀림을 위해 밤낮으로 고된 훈련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번개처럼 몸이 빨라야 빗줄기를 타고 하늘로 오를 수 있습니다그러기를 벌써 3,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 길 외에 다른 길이 나에겐 없기 때문입니다.

  비 오는 날이면 시영이가 우산을 쓰고 등하교를 합니다. 시영이는 비가와도 즐겁습니다. 긴 여름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드디어 날을 잡고 나의 총 에너지를 모아 가장 큰 빗줄기를 타고 하늘로 높이 치솟았습니다. 정신이 아득하고 주변이 까맣게 보였습니다.

  ‘, 그렇게도 원하던 하늘에 올랐구나!’ 하는 순간 나의 몸뚱이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이미 세 번의 경험으로 절망임을 알았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몸을 축 늘어뜨리고 몸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느끼며 푸푸 한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의 귀를 파고드는 익숙한 톡! ! 거리는 발자국 소리, 그럴 리가! 시영이가 나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다급하게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여기 봐! 미꾸라지 죽었으면 어째!”

  시영이는 나의 몸을 조심조심 들어서 물이 가득 든 깡통에 넣어 주었습니다. 나는 시영이를 위하여 몸을 가볍게 흔들었습니다.

  “살았다. 살았어. 안 죽었어!” 시영이는 너무너무 좋아하면서 내가 다칠까 봐 두 손으로 깡통을 받쳐 들고 신부걸음을 걸어서 시영이 학교길 나의 집 웅덩이에 나를 조심스럽게 넣어 주었습니다. 나는 시영이를 보기 위해 시영이는 나를 보기 위해 우리는 서로 가만히 있었습니다해 맑은 시영이 얼굴이 내가 그렇게도 오르고 싶은 하늘에 담겨 있습니다.

  “시영아, 정말 고마워. 너의 꿈은 무엇이니?”

  시영이는 웅덩이 안에 하늘이 있다고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그 후 시영이는 오솔길을 오가면서 반드시 나의 집 웅덩이를 살폈습니다. 나는 시영이가 지날 때쯤이면 훈련을 멈추고 웅덩이 가장자리로 가서 시영이를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고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째 시영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나의 동료들은 시영이가 더 좋은 길로 다니게 되었을 것이라고도 하고, 아버지의 자가용을 타고 다닐 수도 있다고 우겼습니다.

  나는 다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고된 훈련을 끝내고 시영이 걱정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마지막 순간이 오고 말았습니다. 나와 우리 동료들은 물이 줄어 가는 웅덩이 한쪽 구석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웅덩이 물을 큰 바가지로 몽땅 퍼낸 할아버지께 다 잡혀서 우그러진 주전자에 담겨 서로 몸을 부비며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시장 바닥까지 끌려간 우리를 보고 사겠다고 흥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고는 모두 비싸다고 한마디씩 하며 다른 미꾸라지들을 골라갔습니다. 할머니는 늦더라도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웅덩이에서 살았기 때문에 양식해서 키운 다른 미꾸라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물이 적은 주전자 안에서 서로의 몸을 안고 곤두박질하고 있는데, 한 젊은 아저씨가 급하게 미꾸라지를 사러 와서 우리를 흥정하고 있었습니다. 초딩 1학년짜리 아들이 갑자기 배가 아파 죽겠다고 구르길래 병원에 데려갔더니 충수(맹장)가 심하게 부었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재발 위험성이 많으니 수술하는 것이 좋다고 했답니다. 아이 아버지는 몸에 있는 장기에 탈이 났다고 떼어 내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른들께 물어물어 미꾸라지 배를 갈라 충수에 등 쪽을 붙여 두면 독한 냄새가 나면서 충수가 낫는다.’는 지혜를 알아냈던 것입니다. 나는 제발 그 아저씨가 우리를 사 가기를 빌었습니다.

  할머니는 충수 삭이는 약에는 미꾸라지가 딱이다하면서 우리를 주전자째 비싸게 그 아저씨에게 넘겼습니다. 아저씨는 우리를 소중하게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맙소사, 여기가 어딘가시영이네 집?’ 나는 놀라 뒤집어졌습니다.

  시영이가 가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 다. 가슴이 막 쓰려왔습니다. 시영이 할머니는 우리를 보고 충수에 붙일 놈은 한두 마리면 된다고 하면서 나머지로 추어탕을 끓여 먹겠다고 했습니다.

  부엌에서 칼 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시영이 아버지가 나를 골라 시영이 충수에 붙여 주기를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시영이의 충수를 반드시 고쳐주고 싶었 니다. 시영이 아버지는 우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우리 시영이 충수 고치려 와 주어 고맙다.” 고 진정으로 고마워했습니다. ! 이때다.

  “내 배를 갈라 시영이 충수를 고쳐요. 나는 영광스럽게 죽을 수 있어요. 대신 한 많은 내 동료들은 살려주세요.” 애원했습니다.

  “그러지, 약속하지.” 시영이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그 아들에 그 아버지구나!’ 나는 나의 몸을 내밀어 칼질하기 좋게 해 주었습니다. 고통은 나를 실신시켰습니다. 정신을 깨어보니 옥황상제님이 시영이 충수 고치고 독을 품고 너덜너덜해진 내 육신을 수습해서 하늘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시영이 할머니는 추어탕 끓일 준비를 해 놓고 미꾸라지를 찾았습니다. 온 집을 다 뒤져도 미꾸라지 넣어둔 주전자가 보이지 않자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시영이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침 일찍 아범이 주전자를 들고 나갔는데, 혹시?”

아유, 그 아까운 것을시영이 할머니는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사실 나의 가장 행복한 시절은 무논에 살면서 시영이를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행복합니다. 나는 종종 시영이의 꿈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시영이는 축구를 보면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허벌나게 운동장을 헤집고 다니면서 공을 찹니다. 시영이는 책을 보면 과학자가 되겠다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시영이는 쿵후를 할 땐 쿵후 사범이 되고 싶어서 땀을 흘리고 태권도를 할 때는 태권도 사범이 되고 싶어서 콧등에 언제나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습니다. 나는 그런 시영이를 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시영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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