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머거리 집 ②
상태바
귀머거리 집 ②
  • 박혜원(소설가)
  • 승인 2024.02.23 15: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쟁의 참화>중

 

청력을 잃은 고야는 크로키를 시도한 일련의 동판화집 <변덕(Los Caprichos)>(80)을 제작한다. 귀족과 성직자의 타락, 지식인의 허위와 악덕을 비판해 그들을 당나귀와 기괴한 괴물로 풍자하고 그런 당나귀나 괴물을 짊어지고 비틀거리는 민중의 고통을 환상적이고 과감한 생략으로 그려냈다. 이 화집은 1799년에 출간되었으나 종교재판의 두려움 때문에 판매하다가 거두어들였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략하고 민중을 학살하자 시민 봉기가 일어나고 6년간 독립전쟁이 계속된다. 특히 고야는 나폴레옹 군대가 마드리드를 점령하고 에스파냐궁전 앞에서 애국자 들을 처형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180853>을 그렸다. 그리고 6년간 에칭 작품 시리즈 <전쟁의 참화(Los Desastres de la Guerra)>(82점)를 제작한다. 이 시리즈는 사람의 팔다리가 잘려 피가 뚝뚝 떨어지고 고문에 신음하는 모습을 괴물처럼 그려 살육 ·광기·폭행·허무를 재현하고 있다. 전쟁의 비극성과 공포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해 인간의 비인간적인 폭력성을 강조하고 참혹한 현실을 냉정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이 연작은 후일 마네나 피카소의 반전화(反戰畵) 에도 영향을 준다. <부조리> 시리즈 15점은 왕정복고 세력에 대한 환멸을 그려,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말하고자 했다. 한 시신이 종이 위에다 없음이라고 적어 넣는 그림은, 엄청난 희생과 고통으로 얻어낸 평화가 찾아왔을 때 민중들이 받게 될 보상은 아무것도 없는 부조리함을 표현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쉬 잊곤 하지만, 전쟁이나 난민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 문득 전쟁의 폭력 안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등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의 참화가 이어지고 난민들은 세계 곳곳을 떠돈다. 우리나라 역시 남과 북으로 분단된 채 여전히 긴장을 이어가고 있다.

  19791212 군사 반란 당시의 9시간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 수 1,3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는 권력의 폭력성이 인간을 어떻게 괴물로 만들어 가는지, 그리고 그괴물로 인해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 어떻게 빚어지는지 그 진실을 돌아보고자 하는 인간심리의 방증이다. 때론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현실이 있다. 고야의 일련의 작품들은 이러한 인간 현실의 어두운 본성을 들여다보게 하며 잠든 의식을 끊임없이 각성시키고 있다 할 것이다.

  1819(73) 청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고야는 마드리드 교외에 있는, ‘귀머거리 집으로 알려진 별장 한 채를 구입해 은폐생활을 한다. 고야는 그곳에서 <검은 그림(Pinturas negras), 1819~1823> (14점)을 남긴다. 그 당시 그의 편지는 주문 작품에서는 환상이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어 전혀 관찰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관찰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세상의 소리를 잃은 그는 하늘을 붉게 적시며 내리는 저녁노을과 미세하게 흔들리는 나뭇잎 속에서도 슬픔을 읽었고 폭정에 시달리는 민중의 아픔과 인간 욕망이 빚어내는 비극적인 소리를 더욱 깊게 들었던 것이다. 그는 더욱 예리한 눈과 비판적인 정신으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갔다.

  <검은 그림> 연작들은 총 33평방미터에 달하는 벽화로, ‘귀머거리 집의 옻칠한 벽면에 유채로 그려 넣었기 때문에 검은 그림으로 통칭되고 있다. 스페인 당대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을 비유하고 약육강식의 권력세계를 풍자하며 인간의 공포와 절망, 분노 등을 상징한다. 그림에는 눈귀가 먼 것처럼 무지한 상태로 휩쓸려 순례의 길을 떠나는 무리들이 있으며, 타락한 종교재판소 심문관과 정쟁에 휩싸인 탐욕스러운 권력자들이 있다. 간신히 지팡이에 의지할 정도로 죽음 직전에 있으면서도, 식욕과 성욕은 여전한 노인의 모습은 고통 속에서도 지속되는 삶의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윤곽과 세부 묘사는 생략하고 색깔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마녀의 안식일>, <두 명의 마술사>, <죽음이 올 때까지>,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등 음산하고도 비극적인 벽화를 그렸던 것이다.

*사투르누스(Saturnus) : 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경과 계절의 신.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 (Cronos)에 해당한다. 크로노스는 천공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자식으로, 누이 레아를 아내로 삼았다.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긴다는 신탁 때문에 태어난 자식을 차례로 삼켜버렸는데, 마지막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는 레아가 크로노스를 속여 돌을 삼키게 함으로써 살아남아 마침내 아버지를 추방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내용 요약)

                                                                                <다음 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