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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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마음
  • 월평빌라 정진호
  • 승인 2024.03.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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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력을 봅니다. 어느새 2월 마지막 날이네요. 윤일이라 하루가 더해졌으니 보너스 같은 하루입니다. 이미 3월이 시작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도 다르지 않았지만, 올해가 시작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새해에 시작하는 마음의 경쾌함에 기대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결심을 세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1월과 2월이 지나가 버렸네요.

  ‘시작하는 마음이라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근래 이 말을 자주 겪고 접할 일이 많았습니다. 올해부터 월평빌라에 사는 새로운 분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 월평빌라에서 실습했던 학생이 원하는 곳에 취업해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사회복지사를 소개하는 책에 쓴 원고가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때로 무한히 반복되는 것 같아 지난한 하루를 충실히 살아갑니다.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응원하고, 기뻐하고, 인내했습니다. 처음 마주하는 일도, 오래 이어 오던 일도 결국 시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루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책 이야기를 다시 해 볼까요? 지난해 반가운 제안 하나를 받았습니다. 사회복지 전문 서점, 구슬꿰는실 김세진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사회복지를 궁금해하거나 사회복지를 진로로 고민하는 사람과 학생들을 위한 책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각기 다른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를 섭외해서 원고를 받으려 한다고 했습니 다. 스무 명쯤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 일에 함께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난 후에 그러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로서 우리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독자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며 잘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답변하기 전에 저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논리가 있는지 묻고 확인 받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말입니다.

  6월에 초고를 쓰고, 9월에 편집 초안을 받았습니다. 여러 저자가 함께하는 일이니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차츰차츰 글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기대와 설렘이 걱정과 우려를 압도했습니다. 바쁜 일상 중에 드문드문 책을 궁금해하며 보내는 즐거운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제 앞으로 도착한 택배를 받았습니다. 오래 기다린 책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를 소개합니다가 출판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그려진 표지 가운데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여럿이 찍은 단체 사진을 볼 때, 누구나 자기 얼굴을 먼저 찾는다고 하지요.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책에 담긴 글과 생각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 일을 하지만, 같은 생각으로 움직이는 동료를 보며 배운 시간, 동료와 함께 쌓아 온 나날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동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 선물했습니다. 축하는 이쪽에서 받았지만, 감사는 저쪽에 돌아갈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금 시작하는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초심을 떠올리겠다, 시작하던 때로 돌아가겠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동안 충실히 절실히 치열하게,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고 일하며 나아왔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시간을 딛고 일어선 이곳에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뜻입니다. 포부와 같습니다. 어디 가면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사회사업은 당사자와 지역 사회가 복지를 이루고 더불어 살게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 내 앞에 선 사람을 이 뜻과 같이, 배운 대로 거들고 싶습니다.

  문득 시작하는 마음시작에는 끝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의 마무리, 어떤 상황의 마지막이야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있는 한 시작의 다음은 시작일테니까요. 부는 바람에 꺾여 절망하지 않는다면, 희망을 품어 무언가를 절실히 바라며 산다면, 내일도 꿈꾸고 있을 테니까요.

  책상 앞에 내 이름이 적힌 책이 몇 권 꽂혀 있습니다. 지갑에는 명함이 있고, 앞에는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는 동료가 앉아 있습니다어디에서 나눌 글을 쓰는 것 같네요. 일의 현장 속에서 이를 기뻐하며 감사히 여기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으니, 이게 복이 아니면 무엇일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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