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머거리 집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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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머거리 집 ③
  • 박혜원(소설가)
  • 승인 2024.03.1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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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에 묻히는 개, 고야
                           모래에 묻히는 개, 고야

  고야가 살던 스페인은 매우 복잡한 정세 속에 있었다. 스페인의 계몽주의자들은 침체해 있는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서 구습, 미신 등을 타파하고 교육과 이성에 입각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대중의 무지, 성직자와 이단 심판소 등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고야는 기회를 따라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왕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권력과 돈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래서 기회주의자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 최고 절정기에 그는 고열과 두통, 두개골을 울리는 이상한 소리, 현기증과 손 떨림에 시달리면서 귀머거리가 되었다. 아침을 깨우는 명랑한 새소리, 황금 비늘처럼 반짝이면서 흐르는 시냇물, 재잘거리며 춤추는 처녀들의 웃음, 엄마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아이의 발자국 소리들이러한 모든 소리로부터 차단된 고야는 귀머거리 집에서 절대 고독의 상태에서 <검은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귀머거리가 되어 아무것도 기댈 것이 없던 고야에게는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빛이었으며 가장 아름다운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청각을 잃은 후에 고야는 현대미술의 길을 열어놓는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 셈이다.

  <검은 그림>은 인간의 비극적인 요소를 다양한 각도로 그려낸다. <검은 그림>에 나타나는 괴물과 마녀, 유령의 형상은 고야의 절망적인 심정을 드러낸다. 스페인의 암울한 현실과 존재의 무거움에 대한 그의 고뇌가 빚어낸 결과였던 것이다. 영화 <고야의 유령>은 이러한 고야의 작품 세계와 정치적인 배경, 그리고 인간의 복잡한 감정들을 다루고 있다.

  그의 그림 <물살을 거스르는 개>, <모래에 묻히는 개>는 고야 자신이며 동시에 우리 자신을 표현한다. “온몸으로 이 모래를 뒤집어 쓰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어떤 의심을 떨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모래에 묻히는 개가 아닐 수 없다.”(서경식 외.서경식 다시 읽기, 연립서가, 2022.)*는 것이다. 총구의 화염 속에 사지가 잘리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그 어떤 기괴한 그림보다 <모래에 묻히는 개>가 더한 우울함과 공허한 절망을 안긴다. 그러니까 그림 속의 개는, 희망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걸어간다. 모순투성이의 현실 속에서 모래를 뒤집어쓰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고야는 평생 1,870점이라는 방대한 그림을 남겼는데 당대 현실을 다룬 것만도 900점에 이른다. 그리고 1828(82) 416일 마침내 망명지인 프랑스 보르도에서 객사한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방에서 고야의 그림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던 나는,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을 찾았다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루벤스를 비롯해 티치아노, 라파엘로, 보티첼리, 카라바조, 렘브란트 등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도 전시되고 있지만, 나는 그 모든 작품을 뒤로하고 고야에게로 먼저 달려갔다. 그의 그림은 조악한 사진으로 만났던 기억을 뛰어넘어 엄청난 힘으로 밀어붙이며 나를 둘러싼 비정한 현실과 부조리한 세계를 돌아보게 했다. 또한 그 당시 내가 안고 있던 어두운 슬픔과 절망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끔찍한 어두움과 고통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놓여있더라도, 우리의 삶이란 모래 속에서도 발을 내디뎌야 하는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을 응시하고 두려움 속에서도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베토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역시 이 땅의 소리를 잃음으로 하늘에 닿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작곡가로서 청력까지 잃어버린 그는 존재론적 그리움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슬픔과 열정, 고요와 정적, 그러다 폭발하듯 터지는 생명의 분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느끼게 만드는 그의 음악은 영혼을 울리는 소리로, 우리의 심금을 두드리며 자연과 대화하게 하며 천상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그리하여 하늘의 울림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한때 나는 모든 것을 잃고 칩거했던 나의 귀머거리 집이 있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 한복판을 떠나 빈들에 자리를 잡은 집. 차 지나가는 소리, 물건을 사 가라고 외치는 호객 소리, 서로 옳다고 떠들어대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소리, 시끄럽게 퍼지는 갖가지 소문들온통 소리들로 넘치는 자리를 떠나 나는 빈들로 밀려갔었다.

<다음 호에 계속>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작과 비평사, 2002. 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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