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길의 【산중어보】 ① “물고기에게 길을 묻다”
상태바
변희길의 【산중어보】 ① “물고기에게 길을 묻다”
  • 변희길
  • 승인 2024.03.11 1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농사 초짜시절! 고추를 따서 지게에… (앞에 함께 있는 건처형네 아이들)
                          ▲ 농사 초짜시절! 고추를 따서 지게에… (앞에 함께 있는 건 처형네 아이들)

<편집자 주>

변희길 씨는 가조 병산마을이 고향이다대학을 졸업하고 마리 엄대마을에 정착해 농사를 지었다. ‘땅의 주인으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 19854월 카톨릭농민회 거창분회를 결성하였고, 이것은 1988년 태동한 거창군농민회의 모태가 되었다.

변희길 씨의 물고기 이야기를 소개한다.

 

  “15년 농사를 지었습니다. 참혹한 80년대를 그렇게 건너왔습니. 1999년부터 활어유통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물고기들 뒤치다꺼리하다가 물고기 공부를 시작하였고, 이제는 제가 물고기들에게 길을 묻습니다."

 

15, 농사를 짓다

  이것은 당시의 참혹한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내 나름의 방 편이었습니다. 숨쉬기조차 힘들어서 명동성당을 찾아 교리반 신청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였고, 아내의 동의를 얻어 농사를 짓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아내는 말합니다.

  ”그때는 봄에 나오는 영농자금을 가지고 일 년을 살았어.“

25년 바다 활어 유통을 하다

  큰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소득이라곤 딱히 내세울 만한 게 없는데 빚은 늘어나고대학이라도 간다면이제는 참으로 절박한 생활의 방편이 필요했습니다. 말 그대로 생계입니다. 요행히 아는 친지가 있어 98년 괴나리봇짐 하나 들고 홀로 서울행 버스를 탔습니다. 97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었다는 게 그나마 복잡한 내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 현산어보를 찾아서 1~5권
                                                         ▲ 현산어보를 찾아서 1~5권

 

물고기에게 길을 묻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닷가 한 번 가본 적 없고, 먹어본 바다 물고기로는 마른오징어에 문에까리(건문어), 쥐초 밖에 없었습니다그 와중에 살아있는 물고기들을 그것도 대량으로 보관, 유통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지식이라도 얻고자 물고기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003년 무렵 이태원이 쓴 <현산어보를 찾아서>(5 )란 책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물고기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물고기를 공부하면서 차츰 주목하게 된 것은, 물고기들이 인간의 단순한 식용으로서의 대상을 넘어 지구 공동체 속에 함께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라는 점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하고 어찌보면 주제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입니다.

 

▲ 깃대돔 (일명 낫고기), 남해와 제주 연안에 서식한다.
  ▲ 깃대돔 (일명 낫고기), 남해와 제주 연안에 서식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물고기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량자원이고, 물고기 입장에서 인간은 가장 큰 포식자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생살여탈권을 쥔 천적임은 부정할 수가 없을 것입 니다. 그래서 저는 물고기와 인간 사이에 얽힌 스토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를 들자면 물고기의 이름 하나도 그저 지어진 것은 없으며, 동서양의 관점 차이도 흥미가 있습니다. 같은 물고기가 어떤 나라에서는 사람과 죽고 못 사는 관계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사과고기라는 말은 없습니다. 사과는 나무에 달려있을 때나 사람이 먹을 때나 사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나 돼지를 먹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은 소고기이고 돼지고기입니다. 그런데 물고기는 처음부터 아예 고기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아무튼, 이러한 지금까지의 제 생각을 정리해 투박하게나마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댄인! ‘than

이제 인간은 물고기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 기

  농사지을 때부터 생겨난 버릇으로 저는 밤, 겨울, 비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책 읽기 딱 좋은 때이기도 하지만 농사일이 너무 힘들 때 (합법적으로) 이때 만큼은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활어유통을 할 때 실내에만 20여 개의 수족관이 있었습니다아래 위로 500kg의 물고기가 들어가고 24시간 바닷물이 순환되는 큰 수조였습니다. 밤만 되면 우레소리가 따로 없어, 귀에 이명이 생겼습니다. 마누라 하는 잔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좋기는 합니다.

  힘든 시대를 건너는 방편으로서의 농사였든, 절박한 생계로서의 유통이었든 내가 꿈꾸던 삶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먼저 가신 부모님과 동지들에겐 한없이 죄송하고 미안한 맘이지만, 한편 살아 숨쉬고 있음에 늘 감사하며 가끔 되뇌어 봅니다.

무식해서 용감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