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들인터뷰】 거창 청년 김혜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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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들인터뷰】 거창 청년 김혜진씨
  • 한들신문 백종숙편집국장
  • 승인 2024.03.2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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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내 능력을 키울수록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 곳”

  남상면 송변마을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청년 농업인 김혜진 씨를 만났다. 송변마을에 들어서니 가슴이 탁 트인다. 어떻게 이런 풍광을 가진 마을에 살게 되었나 궁금해졌다세 아이의 엄마이자, 청년 농부인 김혜진 씨의 거창으로의 정착 과정, 귀농인이 본 거창 사회 이야기, 작은 학교, 딸기 농사, 이번 호는 그녀의 꿈, 두 번째 이야기를 싣는다.

▲ 모든 농사가 그렇지만, 딸기 농사에도 ‘대충’은 없다. 김혜진 씨도 늘 공부하며 12동의 하우스를 돌본다.
▲ 모든 농사가 그렇지만, 딸기 농사에도 ‘대충’은 없다. 김혜진 씨도 늘 공부하며 12동의 하우스를 돌본다.

 

딸기 농사 이야기

  올해는 모종이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병이 있다 판단해서 다른 농장 모종을 사서 심었어요딸기 농사를 지으면서도 공부를 계속해야 돼요딸기는 대부분 4월 말이면 거의 끝나고 일꾼들이 대부분 빠지거든요. 저는 다행히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을 미리 확보해서 6월까지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 시기엔 거의 잼을 만들기 위한 딸기예요. 저는 거창푸드, 거창몰, 고향사랑기부제 등에 가공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원물 확보가 중요해요. 딸기 수확이 끝나면 상토를 교체하거나 소독하는 시간이죠. 그 기간에 딸기 모종을 키우기 때문에 딸기농사는 15개월 농사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농사에도 멘탈 관리 필요해

  사람들은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 또는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라고 해요. 하지만 저는 두 얘기 중 어느 것이 맞는 거 같으냐고 묻는다면,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가 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밤잠, 새벽잠 줄여 가며 정말 열심히 해도 또 모르는 게 작물이에요. 한 두 포기는 지극 정성을 들이면 내가 원하는 만큼 키울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수 만 포기 작물을 컨트롤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아무리 예방을 잘해도 생각지 못한 병이 덮칠 수도 있고, 환경제어기가 오작동할 수도 있고, 특히 이상기온으로 올해처럼 해가 안 나면 아무리 온도를 올리고 무슨 수를 써도 원하는 만큼 수확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마냥 좌절하고 손놓고 있으면 나머지 괜찮던 것들도 손 쓸 수 없게 돼요. 그러니 멘탈(정신력) 관리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이미 벌어진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찾고 빨리 실행하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거예요.

화장실만 제 것, 나머지는 남의 것

  저는 청년창업농으로 선정된 지 6년째예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확장하지 않아도 되지만, 세 아이 키우고, 생활비에다 대출금까지 갚으려다 보니 딸기 하우스 12동에 육묘장, 가공, 체험장도 운영해야 하고, 투자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에요올해 자동 환경제어 시스템까지 투자하고 나면, 이제 더는 큰 돈 들어갈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화장실만 제 것이고 나머지는 정부와 남의 것이라 얘기하죠.

 

▲ 12만 주의 딸기 모종을 키울 김혜진 씨의 육묘장
                             ▲ 12만 주의 딸기 모종을 키울 김혜진 씨의 육묘장

 

청년창업농 자리 잡기까지 7~10년 걸려

  딸기농사로 자리를 잡기까지 적어도 7년에서 10년 정도는 걸리는 것 같아요. 후계농자금을 대출받아서 농장을 운영하는 제 주변 분들을 봐도 그 정도는 되어야 상환능력을 갖추는 것 같아요. 청년창업농지원으로 이만큼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주변의 도움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땅 한 평 가진 것 없는 청년들이 시골에 와서 기반 잡고 지역민으로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농사로 터전을 마련할 때까지 원금 상환 유예기간을 더 늘려 주는 게 정말 필요한 거 같아요.

청년창업농 끝난 후엔 멘토링 역할

  청년창업농에 선정되면 최장 3년간 지원을 받고 그 후에는 청년 네트워크 구성원으로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나이로 청년을 구분 짓다 보니, 맹점은 사업 선정 시에는 청년이었다가 사업 진행 도중 청년이 아닌 나이가 되어버린 경우, 또는 사업 종료와 더불어 청년의 나이를 넘어설 때는 청년 네트워크에 끼지 못하게 되죠. 지역에선 청년창업농 사업을 받은 청년으로 역할을 하라고 주문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 생기기도 해요.

  그리고 어디에도 끼지 못한다는 또 다른 좌절을 맛보기도 하죠. 청년창업농사업을 끝낸 분들을 적극 활용하여 새내기 청년창업농의 멘티로 선정해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요. 청년창업농 자금을 먼저 활용한 선배로서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농사짓는 법, 마을과의 관계 등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후배들에게 나누는 것이 중요하죠.

  물론 멘토-멘티 사업이 있긴 하지만 사실, 이 사업은 멘토의 농장에서 일하고 월급을 지원받는 시스템이에요. 제가 지역에 적응할 때를 떠올려보면, 농사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절실한 것은 마음을 나누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어요.

딸기농사를 짓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저는 농사를 이삼십 년이나 짓던 분이 다 가르쳐 주겠다는 말만 믿고 귀농했어요. 겁도 없이~(웃음). 농사를 그렇게 오래 지어도 자신이 언제, 무엇을 해야 할 지 정해놓지 않고, “대충 이때쯤 앞집이 뭐하면 따라 하면 된다.”고 하시던 분이 떠올라요. 그때 빨리 딸기 공부에 매진 해야겠다고 다짐한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부를 많이 하고, 주변 분들께 많이 물어야 해요. 딸기농사를 짓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꼭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 농사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차가 오니까 그때 놓치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거죠. 마을까지 오는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있거든요. 자가용으로 마을에서 읍내까지 10분 거리인데, 버스를 타면 둘러, 둘러 가니까 30, 40분 걸리는 거예요. 애들이 읍내에 나가고 싶을 때 자유롭지 못해 불편하고, 학원에 다니는 게 제일 큰 문제죠.

제가 사는 곳이 곧 캠핑장

  저는 거창에 오기 전 주말이면 짐을 싸서 어디든 캠핑하러 다녔어요. 답답한 공기와 막히는 차와 삭막한 이웃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고 편하게 휴식을 취하면서도 아이들을 졸졸 따라 다니지 않아도 되는 제 도피처였어요. 그런데 거창에 오고는 한 번도 캠핑을 안 갔어요. 제가 사는 곳이 캠핑장처럼 자연 속에 있고, 늦게 회의 끝나고 들어갈 때, 하늘을 올려다보면 쏟아지는 별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돼요.

  제가 사는 곳은 그런 자연 속에 있지만 읍과는 10분 거리라 크게 불편한 점도 없이 너무 만족해요. 읍내는 생활 인프라가 잘 돼 있어 걸어 다녀도 될 만큼 편하지만, 도시처럼 복잡하고 개인의 공간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져요.

거창은 나를 키울 수 있는 곳

  도시에 살면서 이것저것 안 해 본 일이 없는 데, 그때마다 난 저 도시라는 기계 속의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 어느 한 부품처럼 쓰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거창으로 귀농하고 보니 나는 하나지만 내가 쓰일 수 있는 곳은 셀 수 없이 많고, 내 능력을 키우면 키울수록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 인터뷰를 마치며, 마을 어귀에서 한 컷
                                           ▲ 인터뷰를 마치며, 마을 어귀에서 한 컷

 

대산농촌재단의 해외연수에 선정

  대산농촌재단에서 농민과 농업관련단체나 실무자를 대상으로 해외연수를 보내주는 게 있어요. 거기에 응모했는데 선정되었어요. 전국에서 16명을 뽑는다고 해요. 4월 중순부터 보름 이상 일정으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를 가 볼 기회가 생겼어요. 어느 국한된 분야에 대한 기술 습득이나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도 하고 우리 지역에, 나아가 우리 농촌에 잘 버무려 제안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는 농업연수예요. 아직 가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미 다녀오신 분들 얘기론 체력적으로도 힘들겠지만, 견문을 넓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해서 기대가 커요. 거창에서도 더 많이 홍보되어 저 이후로도 많은 분들이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을로 들어가 활동가로 변신

  APAN(거창군 중심지액션그룹네트워크)의 홍보이사로 마을만들기 지원센터와는 행복농촌콘 테스트 준비와 발표를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행복농촌콘테스트 경상남도 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대회 준비를 하며 여러분과 신뢰를 형성한 결과 현재는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작년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성과 공유회를 준비하면서 남상면 13개 마을에 들어가 마을 어르신을 인터뷰했는데 너무너무 신났어요. 숫기도 없고, 낯가림이 심하던 제가 거창에 와서 정말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인터뷰하고 편집한 영상에 마을 어르신 얼굴이 나올 때, 어르신들은 내가 티브이에 나온다며 좋아하시던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어요.

신나게 농촌의 가치를 알리는 일

  딸기농사를 기반으로 단순 체험장을 운영하는 것이 아닌 농촌 가치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저는 지겨운 이론 교육이 아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신나는 교육을 하고 싶어요딸기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작물도 키우면서 신나는 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몇 년을 꾸준히 줌바 댄스와 밴드 동아리 활동을 해 오고 있는데 취미 생활도 계속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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