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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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단상〕
  • 역사학자 신용균
  • 승인 2024.03.2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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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정국이다. 선거 때마다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헌법 제1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명쾌하고 아름답다. 선거는 평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직접적인 사건이다. 이때 국민은 권력의 주인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고, 비판, 선택, 교체를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 그 수준이 민주주의의 질을 결정한다.

  권력은 매력적이다. 타인의 행동을 강제하는 공인된 힘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권력은 부, 명예와 함께 인간의 3대 욕망에 속한다. 옛 선조들은 권력의 양보를 최대 미덕으로 삼았다. “시경에 모범이 있다. 우와 예는 이웃 나라, 두 왕은 토지 문제로 다투다가 주나라 문왕에게 중재를 요청하러 갔다. 가보니, 농부는 밭 두둑을 양보하고, 관리는 서로 높은 벼슬을 양보하였다. 이에 두 왕은 크게 깨닫고 화해했다는 이야기다. 이상이다.

  실제로는 정반대. 권력 쟁탈전은 항상 치열했다. 심지어 부자, 형제를 서로 죽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공자가 단언했다. “비루한 자는 벼슬을 얻지 못하면 얻을 것을 근심하고, 이미 얻으면 잃을까 근심한다. 참으로 잃을 것을 근심하면 하지 못하는 짓이 없다.” 이것이 권력의 본질이다. 백이와 숙제처럼 왕위를 양보하는 일은 역사에서 좀체 보기 힘들다따라서 국민이 선거로 권력을 맡기는 제도는 인류 최고 발명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 잘 보여준다.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혈통에서 나온다는 왕정, 신분에서 나온다는 귀족정, 부에서 나온다는 금권정, 힘에서 나온다는 참주정을 겪고서야 비로소 권력은 시민에서 나온다는 민주정치가 출현했다.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정치다. 근대에는 재해석되었다. 대의제 민주주의다. 대통령제든, 내각책임제든 마찬가지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하고, 주기적인 투표를 통해 평가, 교체한다그러므로 선거의 본질은 평가와 심판이다. 총선은 더욱 그렇다. 적절한 사례가 19세기 영국정치다.

  당시 영국은 차티스트운동의 절정기. 인민헌장은 산업혁명으로 급성장한 노동자들의 선거권 요구였다. 영국은 17세기 말 명예혁명으로 소수에게 선거권을 허용한 후, 18321 차 선거법 개정으로 부르주아지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었다. 이때 노동자들이 선거권을 요구한 것. 당시 보수당과 자유당은 번갈아 집권하면서 1867년 제2, 1884년 제3차 선거법 개정으로 노동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였다. 민주주의는 선거와 교체를 통해 발전한다. 인민헌장이 매년 의원 선거를 요구한 것이 그 반증이다.

  이번 총선은 현 정권 2년에 대한 평가다. 기간은 짧았으나 변화는 컸다. 외교로는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가 상징적이다. 현 정권이 친미, 친일 외교에 치중한 결과 중동,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것이 원인이다.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양국과의 무역량이 급감하고, 국내경제가 침체하였다. 그것은 재정 악화로 이어졌고, 과학기술, 문화예술, 지방재정 등의 예산이 축소되었다. 국격의 실추요, 민생의 고초다.

  정권의 방어는 적극적이다. 전 국방장관의 출국.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공수처에 의해 출국 금지되었던 자가 호주 대사로 부임한 것, 마치 거창양민학살사건 후 책임자였던 국방장관 신성모가 주일대사로 임명된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 일은 현역 군인의 죽음과 관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볍지 않다. 하나 더. 정권이 강행하는 의대 증원 정책은 우호 여론에 기대어 강행되고 있다. 거센 반발, 시민들에게 직접 피해가 돌아가면 사정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민주 사회에서 이익단체는 허용된다. 정치는 사법과 다른 원리로 작동한다. 그것의 오해가 진시황의 비극이었다.

  현재까지는 정권의 방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조국혁신당의 선전이 일례다. 창당 열흘 정도의 비례 정당이 벌써 20% 안팎의 지지에 두 자릿수 의원을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공정과 상식이 사실 독선과 아집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는 즉시 결과는 뻔하다. 유권자를 깔보지 말 일이다그들은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온몸으로 온갖 선거를 알고 있는 능력자다정치인은 아니지만, 그보다 똑똑하다. 한국의 유권자는 이른바 주역에서 말하는 잠룡(潛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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