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팝콘】말모이
상태바
【영화와 팝콘】말모이
  • 한들신문
  • 승인 2020.04.21 13: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전미정

1940년대 일제 강점기, 우리말과 우리글을 탄압하고, 우리의 정신을 빼앗기 위해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기를 강요하고 조선어 사용금지가 극에 달했던 시절. 주시경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우리말 원고를 목숨 걸고 비밀리에 갖고 도주한 류정환(윤계상 분). 극장에서 문지기를 서며 감옥 들락거리기를 제집 드나들듯 하는 아이 둘을 키우는 김판수(유해진 분). 그는 극장의 물품을 도적질하다 해고를 당한다. 아들이 월사금을 낼 수 없어 학교도 갈 수 없는 상황이다. 또다시 감옥 동료들과 짜고 한 편을 이루어 소매치기하러 거리에 나선다. 하필이면 돈 좀 있어 뵈는 류정환의 가방을 털게 된다. 류는 판수의 집까지 찾아왔다. 서류 가방 안에 든 것은 우리말 원고였다.

판수는 언젠가 목숨을 구해 준 서 선생의 주선으로 조선어학회에 취직한다. 잔심부름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말단자리이다. 그곳의 대표가 자신의 소매치기 대상이었던 류정환 일 줄이야. 류는 당연히 판수를 쓰지 않으려 하지만 타고난 말솜씨와 친화력으로 직원들과 친해져 버린 그를 마다할 수만은 없다. 단어장을 순서대로 정리하라 했더니 엉망으로 해놓고 낙서만 해놓았다. 까막눈이다. 글자 하나 모르는 인사를 책방직원으로 쓰다니, 더 기가 찬다. 한 달 안에 한글을 떼지 못하면 해고해 버린다고 류가 눈에 쌍심지를 켠다. 조선어학회는 겉으로는 책방이지만, 지하 서고에는 우리말을 모으는, 원고가 가득한 우리말 은행이다. 돈을 모아야지 말은 모아서 뭐 하냐고 너스레를 떠는 판수.

어느 날 인쇄소로 심부름을 보낸 판수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류는 인쇄비를 들고 판수가 도망쳤다고 생각한다. 판수는 심부름 가는 도중에 동료, 임동익이 극장 앞에서 구타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전국 유명시인과 소설가들이 일제에 협력하는 사태에 울분을 이기지 못한 임동익이 분뇨를 그들의 강연이 열리는 극장에 뿌린 것이다. 그가 호되게 당하는 모습을 보고 구하려다 얼굴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시간은 지나 밤이 되어 버린 것이다.

류는 자신이 그를 오해했다는 것을 알고 판수 집에 찾아가 사과한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들이 더 의미 있다고 우리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람 소중함을 알지 못했음을 깊이 사과한다. 글도 가르치고 동지로서 대접한다. 판수는 글을 익히며 우리말의 소중함과 가치에 눈뜨고, 소설 운수 좋은 날을 읽고 온몸으로 감동하며 눈물짓는다.

류는 경성제일중학교 이사장 아들이다. 아버지는 이미 친일로 돌아섰고 그런 아버지 보기에는 허튼수작만 하는 아들이 한심하기만 하다. 일본 순사의 눈을 피해 전국의 사투리를 모아 공청회를 열어 표준어 사전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직 모아야 할 말은 너무 많다. 판수의 도움으로 감옥 시절 친구들을 불러 모아 전국의 사투리를 채집한다. 그 사이에 내부자의 배신으로 지하서고 원고를 순사들에게 다 뺏기고 정신적 지주였던 서 선생은 모진 고문으로 돌아가신다. 서 선생이 밤마다 베껴 항아리 안에 보관했던 원고를 토대로 당국의 눈을 피해 극장에서 영화가 끝난 뒤,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 공청회를 연다. 이렇게 어렵게 전국의 사투리를 모은 원고를 지켜,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이 영화는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잘 그려 냈다.

말모이는 사전이란 순우리말이다. 우리말을 일제의 거센 탄압과 음모 속에서 목숨 걸고 지켜낸 백성과 지식인들의 사투를 보면서 지금의 우리는 너무 함부로 우리말, 우리글을 쓰고 있다는 뼈아픈 각성을 하게 된다. 정신의 지문인, 우리말 속에 남발되는 영어. 쓰임을 잃어버려 녹슬어 버린 우리글, 우리말을 다시 챙겨 소중하게 써서 보석처럼 빛나는 언어를 지켜내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영화를 보며 반성하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