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은 말한다 - 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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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은 말한다 - 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5
  • 한들신문
  • 승인 2022.05.2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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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

문홍한, 불칼 속에 태어난 새 생명(2)

애지중지 키운 소들은 군인들이 다 잡아먹고
  내가 그때 좀 살 만했습니다. 방 안에 농 안에 돈뭉치가 있는데, 소도 많았어요. 소를 3년 동안 먹여가지고, 한 5년이 되어야 새끼를 봅니다. 새끼 낳으면 송아지 새끼한테 밥을 먹인 사람에게 그 공으로 새끼를 주고…. 어째서 그리했냐면, 도저히 농사지어봐야 별 큰 수익이 안돼요. ‘이걸 길러서 애들 공부를 시켜야 되겠다.’ 애들한테 공부를 어떻게든 한번 시켜보려 했어요. 그래가지고 소가 30마리나 됐어요. 30마리 되니까, 여기서 새끼가 태어나고, 저기서 새끼가 태어났어요. 재미나데요. 동네 사람들에게 송아지 낳는다고 보러 오라고 하고…. 만날 그것이 내 일이에요.
  그땐 머슴이라고, 일꾼을 데리고 있었거든. 일꾼은 나무하고, 농사짓고, 소가 또 아파요. 소가 아프면 침놓는 것도 약 먹이는 것도 배워야 돼요. 어디가 아프다 하면 대번에 진료를 했거든. 송아지를 한 마리 팔면 애들 학비를 댑니다. 쌀, 보리는 돈이 안 돼요. 돈이 되려면 삯 줘가지고, 찧어서 팔아야지.
  그때 큰 애가 일곱 살이고, 둘째 애가 네 살이었어요. 불을 확 지르고 가자고 하는데, 마당에 소가 세 마리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군인이 소 세 마리를 몰고 가버렸어요. 군인들이 소를 잡아먹었어요. 내가 소를 잘 먹이다 보니까 살이 쪘거든. 다 잡아먹어버리고….
  또 그 인근 동네에 내 소를 먹이는 집이 있었는데, 거기도 소가 잘 되었는데, 살찐 것은 다 잡아먹었어요. 그래서 소 네 마리를 뺏겼어요. 그러고 나서 가자 하는 통에 안 따라갈 수도 없고, 오늘 저녁에 한 데(추운 곳)서 자니까 이불 하나 가져가려고 방에 들어가서 막 주워 던졌어. 돈 뭉탱이는 생각도 안 나. 급해가지고….

이 나라 백성이 군인 안되고 별 수 있나
  그때 시간이 오후 4시쯤 되었는가. 해가 짧아서 5시 되면 캄캄했거든요. 가는 도중에 군인이 앞에 서고, 우리는 중간에 세우고, 뒤에 차가 오고, 이렇게 했습니다. ‘나가면 안 된다’ 이거야. ‘옆으로 내빼면 총 쏴버린다’ 이거야. 그런데 갑자기 ‘뒤로 돌아’ 하는 거야.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거든요. 그런데 꽉 차버렸던 모양이라. 다른 데에서 사람이 와서 꽉 차버렸던 거야.
  내려가던 도중에 조그만 골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올라가면 마을이 있고…. “이 밑으로 내려가면 지서 주임이 있는데, 지서 주임한테 물어가지고 거짓말했다 하면 가랑이 째 죽인다. 칼로 찢어 죽인다. 바른 말 해라.” 도중에 사람들을 세워놓고 이러는 거야. 나는 일본에 가고 했으니까, 객지 바람도 좀 쐬고 했으니까, 눈치도 좀 생기고 이랬는데, 촌에 있는 사람은 뭔 소리를 하는지, 군인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일곱 살 먹은 애가 내 옷을 보더니 발발 떠는 거야. 그래 ‘나도 군인 가족이다. 시간이 흐르면 이것도(일곱 살 먹은 아들도) 군인 된다. 이 나라 백성이 군인 안 되고 별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 군인 가족에 손을 들었단 말이에요. 군에 간 자기 아들도 군에 보내놓고 생각이 안 나서 손을 못 든 사람도 있어요. 산골짝에서 땅이나 파서 농사 그것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압니까.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쪽에 기관총 다섯 개를 놓고, 군인들이 명령만 떨어지도록 기다리고 있던 거야. 호각을 확 불면서, ‘이 새끼 나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갔거든요.
  총대로 팍 찌르면서 “이 새끼, 가족 없나?” 묻더라고…. “가족 있습니다. 저 빨간 옷 입은 아핸(아이인)데”라고 하고. 우리 안식구 딱 나오니까 호각을 확 불더니 기관총 들입다 쏘는데, 보니까 사람들이 다 죽어버렸어요. 섰던 사람들이 전부 다 엎어져 버렸지. 그때 날이 추웠어요. 눈도 왔지요. 개울가인데, 얼음이 얼어가지고 딛질 못해.
  그렇게 다 죽였으면 그만이지. 돌아다니면서, 산골에는 나무 같은 것이 쌨지(많지) 않습니까. 막 주워다가 시체 위에서 덮더라고. 그러더니 휘발유를 뿌려버려. 총 한번 쏴버리니까 불이 확 퍼지데. 그때 휘발유가 무섭다는 걸 알았습니다. 총 한번 팍 쏘니까, 불이 이는 거야 막. 불이 확 번져가지고, 전부 다 타는 거야. 군인 가족 나오고, 나온 사람들은 불과 한 여남은 명 됐어요. 군인들은 어디로 갔는지 가버리고 없어요.
그 와중에 임신한 마누라는 배 아프고
  우린 어디로 갈 생각도 없고, 초등학교를 찾아갔다고…. 학교를 찾아가니까 해가 다 졌단 말이죠. 그런데 입구에서 군인이 이불을 빼앗아버려. 달라고 하는데, 안 줄 수가 있나.
  나하고 안식구하고, 일곱 살 먹은 큰 애가 아들, 그다음이 딸인데, 네 살 먹었고. 그래서 식구가 넷이 있었어요. 들어가 보니까 교실 안이 꽉 차서, 앉을 데가 없어요. 바닥이 다 물이야. 이상하다. 근데, 이게 물이 아니라 오줌이야. 오줌이 마려워도 못 나가게 했어요. 거기에 딱 집어넣으면, 못 나가는 거야.
  그때 젊은 사람이 후레쉬를 들고 사방을 다니더니 젊은 애들, 젊은 아가씨들을 가자고 끄는데, ‘내일 아침에 밥할 사람이 없다고 밥 좀 해달라’고 데리고 나간단 말이야. 아가씨들 반 나갔지. 얼추 다 나갔어. 그때는 몰랐지만 젊은 사람들은 부역꾼으로 뺐어.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내려올 때만 해도 괜찮더니, (안식구) 배 안에서 애가 나오려고 하고 있는 거야. 애 나올 달이 섣달그믐인데, 학교에서 애가 나올라고 하니까 사람이 견딜 수가 있나요. 애가 나오려 하니 배가 아프지. 방안에 있는 어느 사람이 했는지 모르겠는데, (군인에게) 신고를 했어요. 신고하니까 조사를 세 번, 네 번 와. 애 엄마는 애가 나올라고 그러니까, 아파서 몸도 안 좋고, 말을 못 합니다. (군인이) ‘나오라’, 이거야. 저 사람을 업고 내가 따라갈 수 있냐, 그거야. 놔두면 죽잖아요.
  그래서 업고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니까, 그 운동장에 학교 의자를 다 쌓아 놔. 업고 나가니까 (의자에다) 불 놓고 “오늘 저녁에 좋은 꼴 보겠다”, 이러면서 쌍말을 해. 그렇게 말한 사람(군인)을 세우더니만 몽둥이로 때려 패더구먼. “이 새끼, 뭐야? 애를 낳는 건, 영광인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 너는 그것밖에 생각이 없느냐?” 보니까 대장이야.

부모 죽은 날 아들이 태어나
  학교 교장 사택이 있었어. 거기도 방만 있지 문짝이 없어. 벽도 다 무너져 버리고, 기둥도 날아가 버리고, 그렇습디다. 불태운 집이야. 거기에서라도 애를 낳도록 하려고 군인이 데리고 갔어. 여기서 애를 낳아야 되는 건가, 어째야 되는 건가, 그런 것도 모르지요. 금방 한두 시간 전에 부모형제들, 사람을 10명이나 죽였습니다. 한 날에 다 죽어버렸는데, 뭐하려고 애를 낳는다고…. 내가 한숨이 나와 가지고 가슴을 막 두드렸어요. 내가 나온 게 뭣 때문이냐. 우리 부모형제가 거기에서 다 돌아가셨는데. 그래도 내가 살아야 원수를 갚지. 우리 자식들 공부도 시켜보고…. 그래서 살아났습니다.
  날이 새서 보니까 바로 옆에 물이 있는 거라. 돼지다리 삶은 것, 밥 먹다가 남은 것, 확 늘어져 있어. 군인들이 어제저녁에 여기서 밥을 먹었구나. 군인이 밥하고 국하고를 들고 와서 ‘산모 밥을 먹어야 된다’, 이거야 사람을 죽인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도 있나. 오늘 참 영광이다. 저런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내가 산 거지. 안 그랬으면…. 거기에 갇혀 있었으면, 내가 나이가 젊으니까 나올 수가 없거든요. 젊은 사람들은 전부 부역꾼으로 뽑아가지고, 한 군데에 가둬놓고, 죽였거든요.
  밥하고 국하고를 애들 먹으라고 하니까, 입도 안대요. 애 낳은 엄마에게도 먹으라니까 “나도 배 안 고파요.” 그런 와중에 애가 나왔습니다.
  학교 교실 안에서 사람이 울고불고 소리 지르는 게 어지간했는데, 한밤중 되니까 사람 소리가 안 나. ‘이 사람들이(군인들이) 밤에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어디 가서 죽였나, 어쨌나’ 하는데, 군인들이 왔다 갔다 해. ‘나오면 죽는다’, 이거야. “문밖으로 나오면 죽는다. 다 안으로 들어가라. 나오면 누구라도 쏴 버린다.” 딱 주의를 시킵디다. 이야기하다 보니 두서가 없네요. 뒤에 할 이야기를 앞에 하고. … (후략)
 

▶176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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