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은 말한다 - 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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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은 말한다 - 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6
  • 한들신문
  • 승인 2022.06.2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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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

문홍한, 불칼 속에 태어난 새 생명(3)

…174호에 이어서
애 낳고 날이 새고 난 뒤에 군인이 자꾸만 가라, 그러는 거야. 그래서 금방 나온 애를 들쳐 업고 나왔어요. 자기(안식구)도 피, 나도 피, 모두 핏덩어리야. 애 낳고 나서 산모가 태를 갈라야 되는데, 입으로 끊자니 그럴 수도 없고, 칼이 있어야 끊죠. 바깥에 보니까 가위 소쿠리가 다 있어. 산모가 보고 달라고 그래. (태를) 소쿠리에 놨는데, 태 안에 피가 꽉 찼어. 마당에 굴을 파 놨더라고. 거기에다 다 집어 던져버리고….
  그리고 날이 샜는데, 가라고 하는 거야. 벌떡 일어났어. 네 살 먹은 것은 걷질 못하니 짊어지고 업고…. 산모는 금방 낳은 애를 치마에다 둘러 말아서 업었단 말이야. 저만큼 나가다 보니까, 내 고장이니까, 어디 어딘지 대강 알잖아요. 돌아보니까 연기가 자욱하게 나고, 총소리가 깨 볶는 소리 같아. 내 속으로 ‘저기 가서 모두 죽이는가 보다.’ 내려오다가 한 100명 죽었거든요.
  한 십 리쯤 내려가야 마을이 있습니다. 내려가는 도중에 우리 집안 사위가 하나 올라와. 어디에서 말을 들었던지 자기 장인, 장모, 처남들, 다 어떻게 되었는고, 묻더라고. 죽었단 소리는 못하겠는 거야. “나도 피난도 안 가고 있다가 이 모양이 되어 있다. 나도 형님 형수 전부 다 죽었다. 가지 마라. 너 거기 가면 저승이야 내려오질 못해. 올라가면 너네 집에 못 와.” 그렇게 말하고 내려갔거든. 따라 내려오더라고….
  자기 동네 앞에 가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자고 하고, 나는 안 들어가려고 하고…. 그러는 중에 애들 중 하나를 떡 하니 데리고 가버려. ‘애를 데려가면 안 오겠나’ 하고. 애는 또 자기 데려간다고 울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래선 안 되겠다. 따라가봐야겠다.’ 가니까 자기 사랑방 한 칸을 주더라고, 갈 데고 없고, 쌀도 우리 집에 있고…. ‘여기에서 먹는 데까지 먹고살아보자.’ 그 사람이 나하고 팔촌 간이야. 거기에서 살아가지고 여태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불칼 속에 태어난 아이
Q> 집을 불태웠다고 하셨잖아요. 하루 사이에 다 불태워버린 겁니까? 초닷샛날 불태워 버린 거예요?

  그전에 난리가 크게 나기도 전에 군인이 가끔 와서 한 집, 두 집씩 불태운 적이 있어요. 정월 초닷샛날 불 지를 때는 불과 한 시간도 안 됐을 거예요. 호각 소리 나니까 여기저기 연기가 푹 솟아오르는 거지. 호각 소리가 ‘불 지르라’, 이거야.

Q> 아침에 불을 질렀습니까?
  아니지요. 점심때가 되어서 군인이 우리 동네를, (반장이라고 해서) 날 보러 왔기 때문에 내가 마중을 나갔다고. 동네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가서 선발대를 보고 ‘수고하십니다’ 했더니 ‘반장이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내가 반장입니다” 했더니 “우리 200명 정도 되는데 밥을 못 먹었다. 우리 이렇게 다니면서 아직 굶고 있다. 밥 좀 빨리 해줘라.” 그래서 밥을 했습니다.

Q> 그때 반장을 하고 있었습니까?
  실제 반장은 아니었는데, 반장이라고 했지. 우리 마을로 오는데 그냥 반장이라고 대답했지.

Q> 머리가 참 잘 돌아가셨네요.
  어쩐 일인지 말이 나오데. 그때 내 나이도 반장할 만치 되어 있었고. 사람이 거짓말도 할 때는 해야 돼요. 그때 군인 가족이라는 건 말짱 거짓말이지. 이제 (아들이) 일곱 살인데, 언제 군대 갈 거야? 애가 군인들 옷을 보더니 발발 떠는 거야. 처음 봤으니까 무서워서 떠는 거야. 그렇게 발발 떠는 거 보니까 그냥 ‘나도 군인 가족이다’, 그랬지.
  그때 자기 가족이 군인으로 가 있었는데도 촌사람들은 군인 가족이 뭔지 몰라서 못나간 사람도 많았어요. 

Q> 그때 태어난 애 이름이 뭡니까?
  문명주, 밝을 명(明), 기둥 주(柱). 나이가 55세입니다. 학교 가면 일등이야. 장학금 받아가지고 다녔지. 서울에 와서 졸업해가지고 한전에 갔지. 다른 회사에서 그것보다 돈 더 줄 테니까 나 따라가자고 해서 한 열흘 못 다니고, 다른 회사 들어갔습니다. 그 회사가 지금도 있는데 55세로 상무입니다.
  명주한테는 그때 얘기하기 싫어서 자주 안 합니다. 오늘 어쩌다 보니 그 말이 나와서 했지요.

Q> 일곱 살, 네 살짜리 애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일곱 살짜리가 큰 앤데, 느지막하니 여식 둘을 더 낳아 오남매를 키웠어요. 이름이 일만 만(萬), 기둥 주(柱), 만주가 지금 환갑 넘겨서 63세네. 네 살짜리는 여식 앤데, 옥석(玉石)….

얼레빗이 어머니 마지막 유품
Q> 사건 난 이후에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사건 난 이후에 가는 도중에 나하고 팔촌 간 되는 사람을 만나 그 집 사랑에서, 피난을 한 거죠. 그런데,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어디에 숨어 있었던지, 거기로 찾아내려 왔어요. 면에서 조정을 해가지고, 경찰들이 들어오고, 정치도 좀 하고….
  그 (사람들) 죽은 동네에 가서 어떻게 해서든 농사를 지어야 될 것 아닙니까. 어떻게든 빨리 가서 농사짓고 하라고 합디다만 무슨 돈이 있어야지요. 나는 돈도 많이 있었는데, 태워버리고, 소도 많이 있었는데, 한 마리도 없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그때는 경운기 그런 게 없었습니다. 소가 아니면 논을 못 갈아요. 소가 그렇게 중요했지요. 지금은 소로는 농사를 짓진 못 한단 말입니다. 전부 경운기로 다 하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진주법원에서 판결이 나지 않았습니까. 양자 갔다고 난 유족이 아니란 거야. 나 낳아서 키운 생부모가 중요합니까, 양부모가 중요합니까, 생부모가 날 안 낳아서 안 키웠으면 난 이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는데, 어찌 이런 법이 있습니까. 항의를 좀 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데요.

Q> 가족 중에서 돌아가신 분이 누구입니까?
  어머니, 형수, 형님, 제수, 그러고는 전부 조카요. 학교까지도 못 가고 내려오다가 죽었습니다. 탄량골에서 죽었어요. 내가 살던 동네가 대현리인데, 여섯 동네가 있었고, 탄량골도 해녀리로 들어가 있었어요.
  내려오다가 (군인들이) ‘군인 가족 손 들으라’고 했지요. 손들고 나오니까 (남아있는) 한 100명이 죽어버렸죠. 우리 네 식구가 나왔고, 그다음에 다 죽였어요.
  거기서 가족들이 죽었지요. 내 동생은 지금 살아 있습니다. 동생이 지금 다시 결혼을 해가지고 살고 있는데, 그때 동생도 애들 서넛이 있었거든요. 그때 다 죽었습니다. 동생은 군인드에게 붙잡혀서 짐 지고 다녔어요. 군인들 짐 지고 따라다녔는데, 나흘인가 닷샌가 꼬박 그 사람들 따라다녔어요. (가족들이) 이렇게 죽은 줄도 모르고 다녔지요.

Q> 동생분이 어디로 따라다녔죠?
  군인들 탄환짐 같은 것 짐 지고 따라다녔는데, 어디로 갔었는지는 모르더구먼. 짐 지고 다닐 때는 (군인들이) 동네 와서 불 지르고, 그런 것도 몰랐죠. (나중에) 가라고 해서 왔는데 집도 없지, 식구들 다 죽어버렸지. 동생이 환장을 해가지고…. 안 그랬겠습니까? 그렇게 깊이 사랑하고 살던 그 사람들이 없어져 버렸는데, 사랑하던 애들도 모두 다 죽어버렸지. 엄마 죽었지, 형님, 형수, 조카들 다 죽어버렸지.

Q> 그때 사람들이 많이 갔습니까?
  인근 동네에 몇 사람 없으니까 부역꾼이 많이 왔지.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들이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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