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내가 남긴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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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내가 남긴 시간들’
  • 한들신문
  • 승인 2022.08.3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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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생활재활교사 신은혜

날씨가 아주 화창한 토요일입니다. 여름 필터를 덧씌운 창밖 풍경이 청량합니다.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입니다. 커피를 마시며 잠시 생각합니다. 이런 날, 이런 시간에 나는 무엇을 했나…. 
  거창에 살고 있는 청년들은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나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기록해 봅니다. 나의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하는 일들을요. 

1. 거창이 품은 바다
  처음 거창에 왔을 때, 거창 행정지도를 보며 모든 면 소재지를 다 가보기로 했습니다. 거창 곳곳을 잘 알게 되면 이곳에 빨리 정붙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가 지냈던 곳은 늘 바다가 있었기에 그 과정에서 바다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열심히 돌아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해서 바보 같은 말이지만, 아무리 가도 바다는 없었어요. 답답한 마음에 지인에게 하소연했습니다. 내가 거창에서 바다가 보고 싶어 매주 돌아다니고 있는데, 아무리 다녀도 바다가 안 보인다고요. 그랬더니 지인이 우리나라 지도를 찾아보라고 하더군요. 거창은 내륙 지역이라 바다가 없다면서요. 아차 싶었습니다. 
  거창에서 바다 찾기는 예정된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저는 거창에서 바다를 보았습니다. 정확히는 바다만큼 좋은 곳들을 알게 되었어요. 조선 시대로 저를 옮겨 놓은 듯한 황산 고가마을의 밤하늘, 풀 냄새가 더욱 짙어지는 비 오는 날의 창포원, 북상 초등학교 앞 가로등 아래 눈 나리는 풍경….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거창에서 보았고, 보고 있습니다.

2. 마음의 안식처
  서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가지 못할 때는 누군가 저 대신 서점 가는 것만 봐도 좋아요. 대형서점도 좋지만, 동네 골목골목에 있는 작은 서점들이 더 좋습니다. 
  거창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정말 그 바람이 이루어졌습니다. 생겼어요, 독립서점이, 거창에! 
  종종 그곳에 들릅니다. 어떤 날은 문득 생각나서, 또 어느 날은 마음먹고 찾아갑니다. 그저 가게를 둘러보고 커피 한 잔 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기쁨이 얼마쯤 차는 듯합니다.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고 한 권이라도 손에 쥐고 나오는 날엔 더 마음이 가득 찹니다. 물론 책을 샀다고 다 읽는 것은 아니지만요. 책에 관한 좋은 기억들이 있는데, 그로 말미암아 저에게 책이 있는 공간, 책이라는 물건이 주는 안정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거창 유일의 이 독립서점은 저에게 아주 의미 있는 곳입니다. 

3. 내 손 안의 무지개
  마음이 힘들 때 문구점에 들러 쓸데없는 물건 사는 걸 좋아합니다. 색색깔 볼펜이며 형광펜을 몇 자루 사서 동료나 지인들과 나누며 기분 전환을 합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친한 지인에게 배운 방법이에요. 나와 타인에게 모두 무해하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방법이라 여기고 자주 그렇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문구점이란 곳도 좋아하게 되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필기구도 생겼고요. 거창에서 제가 아주 좋아하는 브랜드의 형광펜을 색깔별로 파는 것을 발견하고 참 행복했습니다. 문구점에서 새로운 색깔의 형광펜을 보면 반드시 사게 되는데,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이외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여러 일들이 있어요. 가령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든가, 음악을 듣는다든가 아무것도 안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요. 최근에는 동료를 통해 알 게된 한 영화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영화를 보는 것에 큰 재미를 느끼고, 거창에서 열린 백남준 판화전에 간 것도 좋았습니다. 
  거창에서 여가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하는지 생각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채워주는 이 일들이 사실은 내가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남겨서 하는 일들이란 것을요. 감악산 전망대에 갈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수히 많은 별에 시선을 빼앗겼다면 지금은 왠지 야경을 더 바라보게 됩니다. 
  이제는 닿지 않는 곳보다 내가 돌아갈 곳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된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은 내가 돌아갈 곳에 별만큼 좋은 것들이 많아져서 그렇다 여기려 합니다. 다른 이들의 별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품고 사는 마음의 별을 좀더 들여다보고 싶은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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