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불확실성 시대의 존재 의미1
상태바
[수필] 불확실성 시대의 존재 의미1
  • 한들신문
  • 승인 2022.11.14 1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혜원(소설가)

어느 날 보험회사에서 우편물이 하나 날아왔다. 보험금 명세서 같은 것이었는데, 그곳에는 나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나이, 최종학력, 경력, 가족 사항, 월수 입금 등, 나조차 미처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나에 대한 세부 사항들까지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나의 연금과 재산 총액까지도 통계적인 숫자로 명시되어 있었다. 내가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에 대한 경제적 내력과 설계가 한 장의 종이에 숫자로 도식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그 보험회사는 나와 아무런 계약을 맺은 적도 없고 그렇다고 나의 미래를 위해 누군가 대신 보험금을 넣어준 사람도 없었다. 그 회사와 나는 전연 관계를 가질만한 계기도 약속도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정보를 자산으로 가진 그 회사는, 한 장의 종이 위에 나의 삶을 숫자로 환치하여 채워놓고 있었다. 문자로 기록된 숫자들을 통해 ‘나는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거대한 자산을 갖고 있는 이 체제 안으로 들어와 확실하고 보장된 미래를 보장받을 것인가, 아니면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너 혼자 궤도를 이탈한 우주 속의 미아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보낼 것인가’를 아주 도발적인 기호로 묻고 있었다. 나는 불쾌함과 함께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길을 걸어가고 있는 순간에도, 누군가 나를 항상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있는 눈빛이 있음이었다.
  감시사회는 어떤 사회에 속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저장하며 분석해 활용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에 의하면 근대 이후 우리 사회는 만인이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됨으로써 누구나 감시망에 노출될 수 있다. 스마트폰, 신용카드, 자동차 블랙박스 등이 보편화되면서 사회적 감시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사람 17명당 CCTV 한 대가 존재하며, 통화 기록과 위치, 그리고 관심사를 포함한 개인정보가 항시 데이터로 축적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단적인 예이다. 이렇게 정보화 사회가 진화를 거듭할수록 우리 사회도 푸코적인 파놉티콘1)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이미 오래전에, 소설 [1984년]을 통해 이런 감시사회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소설 속 빅 브라더(Big brother)는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텔레스크린, 마이크로폰, 사상경찰 등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한다. 결국 사회는 인간의 자유와 감정이 완전히 말살된 전체주의 사회가 된다. 
  정말 소설처럼 현재 우리의 삶은 매스 미디어에 의해 조절되고 왜곡되며, 건전한 의사소통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미래는 정보를 가진 자가 권력을 휘두른다고 했다. 그런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미 우리의 현실은 그 지점에 와 있다. 빅테크 기업은 막대한 자본력으로 고객의 빅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교하고도 강력한 알고리즘으로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을 조종하고 설계한다. 우리의 삶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을 휘두르고 있는 이런 강력한 감시와 조정 속에서 자기의 주체성을 지키는 것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 역시 SNS에서 읽은 글이나 영상을 통해 본 말투와 감정으로 이야기하고 느끼고 세상을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처음 나타났을 때는 생경하던 유행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각종 광고 문구에 따라 그 사물을 인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과연 ‘나’란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나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그들이 규정하는 나는 진짜일까? 겉으로 보이는 나는 나를 얼마나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곳엔 내가 없고 내가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가 매스 미디어에 의해 지배되고, 빅테크 기업이 가진 막강한 정보에 따라 기록되고 미래가 설계된 보험 명세서상의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진정한 ‘나’인 것일까?



 1) 파놉티콘(panopticon) : 1791년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고안한 원형 감옥. 중앙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감시탑 바깥의 원 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방을 만들도록 설계했다. 죄수들은 자신이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결국은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서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