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불확실성 시대의 존재 의미2
상태바
[수필] 불확실성 시대의 존재 의미2
  • 한들신문
  • 승인 2022.11.30 1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혜원(소설가)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는 소설이 있다. 199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하나코’를 생각하면, 그녀에 대한 기억이 코 하나만 오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 코’이다. 늘 안개에 싸여 있는 물 위의 도시 베니스처럼, 그녀를 생각하면 기억 속에 그냥 코 하나만 둥둥 떠다닐 뿐,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녀가 무슨 이야기들을 했으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그저 모호하다. 화자는 늘 하나코 주변에 있었지만 결국 그녀를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나는 너의 눈짓이, 너는 나의 의미가, 서로가 잊히지 않는 그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누군가의 ‘보임’ 속에 두고 싶어 한다. 어쩌면 나는 나의 생각과 삶을, ‘문자’라는 매체에 담음으로써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기억 속에 남겨지려고 몸부림치는 건지도 모른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자 매체까지 동원해 자신의 삶을 확실하게 기록하고자 한다. 결혼하는 날, 영화의 주인공처럼 신랑은 아내를 안고 돌며 신부는 함박웃음 띤 모습으로 남편의 입을 맞추고 그것을 영상으로 남긴다. 디지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기의 이야기와 모습을 인터넷의 바다에 띄운다. 누구나 ‘누군가에게 특별한 그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런 기록들이 나의 존재 의미까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을까? 어쩌면 또 다른 차원의 어떤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숙종과 대종, 두 황제의 스승이었던 혜충스님이 노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대종황제가 문병을 와서 물었다.
  “몸은 좀 어떠하십니까? 만약 스님이 죽는다면 기념으로 무엇을 만들어 드릴까요?”
  혜충스님이 대답했다.
  “화려한 묘나 탑은 전연 필요하지 않습니다. 만두 정도 크기의 흙으로 된 무덤이면 충분합니다.”
  이해가 안 되었던지, 대종황제가 다시 물었다.
  “그 형상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스님께서는 무슨 도안이라도 있습니까?”
  그러나 스님은 숨이 차서 대답을 못했다. 그러고는 며칠 후 돌아가셨다. 대종은 혜충스님의 제자, 응진을 불러 ‘흙 만두의 묘’에 대해 상의했다.
  응진의 대답은 매우 시적이었다.
  “소상의 물은 북으로 흐르고, 담강의 물은 남으로 흐른다.”(-[벽암록(碧巖錄)] 18칙(則)에서 발췌해 정리)
  이는 ‘소’와 ‘담’을 중심으로 한 대우주를 의미한다. 그 탑의 모양이 어떠하든 그것은 우주를 의미하며, 그 속에는 이미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음이다. ‘무봉탑’1)속에 우주를 담고 있는 것이다. 
  혜충스님은 무봉탑을 말했지만 실은 그의 마음속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존재가 대우주와 영원히 함께함을 확신했다. 그리고 대종은 그 나무 아래 있었음에도 혜충과 함께 하지 못했고 응진은 정확하게 그의 마음을 알았다. ‘무영수하합동선(無影樹下合同船)-그림자는 없어도 그 나무 아래의 흐름을 따라 함께 하는 배’인 것이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을 남겨둔 적은 없었다. 뒷날 제자들이 ‘무영수하합동선’으로서 그들의 말씀과 삶을 기억하면서 되살려냈던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어떤 존재가 나를 기억하는 사실이 두려운 현대사회, 그러면서도 그 사회가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의 불안과 외로움. 이런 불합리 속에서 나의 실존을 확실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혜충스님이 가졌던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과, 응진과 같은 배를 원한다는 것은 이 시대에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팬데믹을 거치며 디지털 전환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기기들은 많은 편리를 가져다주지만,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2)는 이제 디지털에 중독되는 인간, 호모 아딕투스3)로 변해 가고 있다. 그런 시대 속에서 나의 존재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나를 잘 모르겠다. 

1) 無縫塔(무봉탑) : 대좌 위에 달걀 모양의 탑신을 세운 탑으로 한 덩어리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흔히 선승의 묘표로 쓴다.
2)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 ‘스마트폰(smartphone)’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인류)’의 합성어로,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새로운 세대를 뜻한다.
3) 라틴어로 사람을 뜻하는 ‘호모(Homo)’와 중독을 뜻하는 ‘아딕투스(Addictus)’의 합성어로 플랫폼, 알고리즘 등의 디지털에 중독된 신인류를 뜻하는 신조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