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성경의 지혜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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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성경의 지혜 55
  • 한들신문
  • 승인 2022.11.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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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학 박사 월드선교회 담임목사 박병철
구약학 박사 월드선교회 담임목사 박병철

<슬픔을 춤으로>
슬픔은 우리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 자신과 가족에게 닥치는 불행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불행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슬픔을 만난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까?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갈까? 가까운 가족의 죽음과 같은 큰 사건에는 사실상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우리는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극도의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는 그들의 슬픔을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일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보거나 의지할 것이 없음을 느끼는 외로움과 상실감이 그들에게 있을 수 있다. 이럴 때는 그들과 함께 있음으로 위로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우리 남은 이들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그들의 친구이고 그들의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들이 울 때에 우리가 함께 울 수 있는 것은 큰 슬픔을 함께 나누는 효과가 있다. 함께 울고 가슴 아파하는 것은 슬픔을 당한 자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지만 우리 또한 그들의 울음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즐거워하는 자와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15).” 예수도 가까웠던 나사로란 사람이 죽었을 때 울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복음 11:35).” 울음의 이유가 다양할 수 있어도 슬픔을 울음으로 표현함으로 그 고통스러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몰라도 울고 나면 그래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경험을 하곤 한다. 울기 전보다 울고 난 후의 우리의 마음은 분명 다른 것이다.
 슬픔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위로의 말로서 그들을 위로할 수 있다. 표현하는 말이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잠언 16:23). 슬픔의 때에 알맞은 말을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어도 잘 선택된 유익한 말은 슬픈 마음에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말 한마디라도 그들에게는 실낱같은 붙잡고 싶은 그 어떤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수많은 표현들이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몇 마디가 더 유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과 더불어 슬픔을 가진 사람에게 다시 살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는 외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일어설 수 없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새우는 것이다. 다시 걸어가며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를 살펴주며 외적인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슬퍼하는 이웃에게 다가가서 함께 하며, 함께 울고, 함께 생존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가? 이웃에 대한 사랑과 연민 때문만일까? 그것은 슬퍼하는 이웃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슬픔은 지금 슬픔을 당하는 이웃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만날 것이고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웃에게 그렇게 위로했듯이, 나에게도 슬픔이 다가올 때, 누군가도 나에게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편 30:11).” 나 또한 내 이웃의 손이 필요하며 다시 춤추도록 초대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슬픔이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듯이 기쁨과 위로 또한 삶의 한 부분이다. 슬픔이 지나고 나면 또한 기쁨이 올 수도 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편 30:5).” 현재의 슬픔도 잘 견디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고통과 슬픔 자체가 행복이거나 기쁨 자체는 아닌 것이 분명할지라도, 잘 받아들이면 언젠가는 기쁨의 춤을 출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슬픔의 순간에도 슬픔의 춤으로도 통곡하듯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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