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은 말한다-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18
상태바
거창은 말한다-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18
  • 한들신문
  • 승인 2023.03.27 15: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

김운섭, 그때 다섯 번 죽었다 살아난 기라 (4)

▲거창사건 생존자 김운섭. 본 책에서 발췌.
▲거창사건 생존자 김운섭. 본 책에서 발췌.

…194호에 이어서  
가족 죽인 군인들과 보낸 하룻밤
  ‘이제 집으로 가야하나. 어디로 가야하나.’ 이게 계산이 안나오는 거야. 집에 가면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가 계실 것 같아. 그런데 거기 가면 군인들이 있을 거고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를 해야할 것 같으니까 고모네 집으로 가야겠다 싶었어요. (얘기를 하면 빨갱이 첩자라고 나도 죽일테니까.) 몇 시간 만에 내가 굉장히 영리해진 기라. 그래서 우리 고모네 집으로 간 거야. 보초가 졸고 있을 때 방문을 여니까 군인들이 소고기도 굽고 밥을 해먹고 난 상태더라고. 조그만 놈이 하나 나타나니까 방안에서는 노리갯감이나 하나 나타났다 하고 “너, 어디서 왔냐?” 이래. 그래서 여기가 우리 고모네 집이라고 하니까, “밤에 쪼매난 놈이 왜 돌아다니냐?” 그라대.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아저씨들 짐 지고 가서 안 오셔서 고모네 집으로 왔다’고 하니까 ‘너, 누님 있냐?’ 없다고 하니까 ‘이모나 고모는 있냐?’ 이 새끼들이 주로 여자만 찾는 기라. ‘행님 있냐?’ 하길래 ‘행님 없다.’ ‘동생 있냐?’ 하길래 ‘동생도 없다. 나하고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셋이서 살다가 어머니는 한 3년 전에 돌아가시고 지금은 아버지하고 둘이 살고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또 느닷없디 “니 행님, 어디갔니?” 묻는 기야. “예? 우리 행님 없어요.” 그기 유도심문이라. 요즘 말로 하면…. 한참 물어보더니 ‘쪼매난 새끼가 영리하다’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라고. 머리를 쓰다듬으니 피가 묻거든. 등잔불을 켜 놓고 있으니까 내 모습이 잘 안 나타났던 거야. 그래 하더니 조금 있다가 “너 밥 안먹었제?” 하면서 소고기국이랑 밥을 주더라고. 참 냄새는 좋드만. 그때만 해도 내가 육식을 못해가지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을 줄 몰랐어. 그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고. 그리고 밥이 이상하게 안 먹혀. 못 먹고 있으니까 그 중에서 좀 높은 놈이겠지. 그 놈이 (쫄병을 보고) ‘건빵 하나 내놓으라’ 하대. 그래 건빵을 하나 주면서 먹으라고 해. 그런데, 나는 건빵이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본 거거든. 그리고 맛난 것이 있으면 어른부터 잡수고 나면 먹어야 한다는 가정교육을 배워가지고 ‘이 좋은 게 생겼으니까 아버지부터 먼저 보이고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 ‘아버지부터 먼저 보이고 먹어야 된다’ 이카니까 즈그들끼리 뭐 웅성웅성하고 그라더라고. 한참 있다가 군인들이 잠을 자대. 어떤 놈은 코를 골고 자더라고. 나는 벽에 기대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무서운 꿈을 꿔서 깜짝 놀라고, 무슨 소리가 났던 모양이야. “왜 이래, 임마?” 날더러 그라더라고. 그래 잠을 자면 안되겠다 싶어가지고 될 수 있으면 잠을 안 잘라고 하고. 군인들 자는 것만 쳐다보고 있었지.
  그런데, (새벽이 되어) 날이 좀 어둑어둑해지니까 군인들이 마당으로 옹기종기 모이더라고. 한 5시쯤 된 것 같아. 모이더니 인원점검을 하는지 ‘하나, 둘….’ 어째쌌고 그러더라고. 나는 집에 간다고 나왔어.
  집에 가려고 맨발로 땅바닥에 내딛으니까 발이 시려워서 뜨뜻한 방으로 올라왔어. 어떤 놈이 마루 밑에를 쳐다보더니 짚신을 하나 꺼내주더라고. 다 떨어진 어른 짚신을…. 주면서 “이거라도 한번 신어봐라” 그라더라고. 그래 그걸 질질 끌면서 집으로 왔어. 거서 우리 집까지 한 30여 미터 떨어져 있었어요. 집에 오니까 날이 희끄무레하더고.

조그만 새끼가 거짓말한다 쏴버려
  집에 보초가 있었는데, 쪼매난 게 건빵을 하나 들고 들어가니까 “새끼, 어떤 놈이야?” 하면서 구둣발로 디비 차버리는 기라. 마당에 또 나뒹굴어버렸네. 어린 게 건빵 그기 얼마나 중요한지 그거만 주어가지고 있고. 방에 있던 놈이 ‘요리 오라’ 이카더라고. 그래 인자 마루에 올라서가지고 방문을 짚고 섰지. 거기서 “너 임마, 어데 사는 놈이냐?” 우리 집이라고 그랬지. “느그 집이면 느그 엄마, 느그 아버지가 있을텐데 어디 갔냐?” 이거야. 그래 ‘아버지는 어제 아저씨들 짐 지고 가서 없고 나는 고모집에 갔다가 오는 길’ 이라고. 그라니까 거서도 “느그 형님이나 느그 누님 없냐?” 이거야. “우리 어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고 아버지하고 둘이 살았다.” 이래 얘기를 하니까 “저 놈의 새끼 거짓말한다.” 이거야. 집에는 어머니가 있었으니까 여자 옷도 있고, 그랬을 거 아냐.
  그때는 우리 집 뒤에 2~3미터 되는 굴이 하나 있었다고. 별난 거 다 갖다 놓는 땅굴이 있었어. 그 해에는 나락 농사가 좀 잘되었어. 그래서 떡이나 과자를 만들어서 굴에다 재어 놨었다고. 그러니까 “느그 엄마가 없는데, 굴에 떡 같은 게 왜 있냐?” 그래 그건 우리 것이 아니라 우리 집에 굴이 있으니까 이웃에서 갖다 넣어 놓은 거라고. “그러면 저기 걸려 있는 저 여자 옷은 누 거냐?” “그건 우리 엄마 꺼다. 내가 옷이 별로 없어서 가끔 그런 거 걸치고 댕긴다”고 하니까 “요 쪼그만 새끼가 거짓말을 잘한다, 쏴버려!” 하더라고. 인자 난 죽은 거야. 혼이 다 나간기라.
  그러고 있는데, 보초가 “선발대 인자 간다, 가자.” 이런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 다음에 철커덩하고 총소리가 나고 화약 냄새 같은 게 얼굴에 확 닿더라고. 화끈하더라고. 그러고 마루바닥에 쓰러졌어. 한참 있으니까 또 정신이 돌아와. ‘이상하다. 난 죽었는데, 총에 맞았는데….’ 그래서 어디에 총을 맞았는가 찾아 봤지. 근데 몸에 총맞은 자국이 없어. 총은 분명히 쏘았는데….

▶196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