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은 말한다-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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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은 말한다-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17
  • 한들신문
  • 승인 2023.03.1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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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

김운섭, 그때 다섯 번 죽었다 살아난 기라 (3)

▲거창사건 생존자 김운섭. 본 책에서 발췌.
▲거창사건 생존자 김운섭. 본 책에서 발췌.

…193호에 이어서  
아버지는 군인들 짐 지고가
  거기서 한참 헤매다가 도리가 없고 갈 곳이 없어서 나도 어머니 옆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있었지. 날은 어두워지고, 춥고 몸이 오그라들기 시작하는 거지. 이렇게 밤을 지내면 죽는 거지. 그런데 내동에서 2월 5일 날 희생당한 그분의 형님들, 할아버지, 그러니까 우리 집안의 할아버지뻘 되는 분들이 올라왔어. 지금 우용이, 즈그 할아버지야. 그 어른들이 올라오셔가지고 허겁지겁 시체를 헤집는 거야. 거기는 딸들, 며느리들, 애들 해서 여섯 명의 가족이 희생이 되었어요. 그런데 손자, 손녀가 부상을 당했는데, 살았거든. 둘을 한 등에 업고 가는 거야. 옆에 있는 나는 쳐다볼 겨를도 없지 뭐. 그 어른을 따라서 내려와서 살아남았어요.
  내려와서 다시 우리 마을 내동으로 갔어요.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거기 있었지. 그래서 이제 뭐 가족을 다 잃어버린 꼴이라. 내동에서부터 그 군인들의 짐을 아버지가 지고 갔어. 우리를 학살한 군인의 짐을…. 아버지는 우리를 하루 전에 먼저 보냈으니까 청연마을에 있으리라 안한 기라.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를 안 찾아본 거야. 찾아봤으면 우리도 살았을 텐데….
  그런데 군인들이 (청연에서 거창으로 넘어가다) 날이 어둑해지니까 내동으로 왔다고. 와서 소를 잡아먹고, 밥 해먹으면서 하룻밤을 보냈다고. 2월 9일 밤을 내동에서 보냈어요. 그런데 신원 사건에서 군인들이 10일 날 거창에서 내려왔다. 이래 되었거든. 내동에서 잔 줄 모르고. 지금 역사가 그래 돼 있어요.

산 속에서 혼자 얼어 죽을 뻔
  군인들이 우리 내동에서만 잔 게 아니고, 오래마을, 그 당시는 조사마을이라고 그랬어요. 내동과 오래마을에 분산해서 잤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어요. 하여튼 내동에서 2월 9일 밤에 군인들이랑 함께 잤어요. 그 얘기를 조금 할게요.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있는데, 또다시 군인들이 몰려오는 기라. 인자는(이제는) ‘마루 밑으로 숨을까’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희끗희끗한 게 산으로 올라가더라고. 맨발로 산으로 따라 올라갔지. 내동마을 뒤에 당산이라고 솔이 오목한 데가 있는데, 당산제 지내는 그런 데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마을 사람들과 밤에 같이 있었는데, 그때 홑바지, 저고리만 입고 있었거든.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옷이 전부 찢어져 있었는데, 겨울바람이 어찌나 매서운지 그 고통이라는 것은 말로 못하는 기라. 마을 사람들은 신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담요 같은 걸로 뒤집어쓴 사람도 있고, 그런데 내 꼴이 하도 더러우니까, 피를 뒤집어썼으니 그 냄새는 말도 못하죠. 그러니까 내가 자기들 옆으로 가는 게 싫은 눈치더라구.
  당산이라는 데는 대낮에도 무서워서 안 올라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산속에서 마을 주민 한 여남은 명하고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추워서 예서 있으면 다 얼어 죽겠다.”라고 하면서 전부 자기 연고지로 하나둘씩 떠나 버리네. 결국은 산속에 나 혼자만 남는 기야. 그 무서운 곳에서…. 바람은 쉬지 않고 불고, 얼마나 추운지…. 그래가지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거의 기다시피 해서 마을로 다시 내려온 기야. 내가 지금 죽을 고비를 다섯 번 넘겼는데, 이때가 두 번째 고비예요. 
  내려오는 길이 한 1Km 정도는 될 겁니다. (당산에서 마을까지) 내려오는데, 천 리, 만 리보다 더 멀게 느껴져. 짐승이 나올란가 무섭기도 하고. 마을 뒤까지 가까스로 왔는데, 군인들이 마을을 순시하며 돌아댕기는 기라. 순시하는 두 놈에게 딱 걸렸어. “누구야, 손들어!” 하면서 총을 딱 들이대는 기야. 난 두 손을 바짝 들었지. “너, 어떤 놈이냐?” 하더라고. 그래 ‘마을 사람들을 따라 피난가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도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그랬어. 군인들이 상투적으로 묻는 거는 빨갱이가 어쩌고 그걸 묻는 게 아니고 ‘느그 누이나 이모 있냐’, 이거부터 물어와. 그리고 ‘느그 엄마, 느그 아버지 어떻게 되었냐, 느그 형 있냐’, 이런 걸 물어봐. 그래서 “난 아버지와 둘이 산다.” 그때는 우리 아버지가 군인들 짐 지고 간지도 몰랐다고. “어제 우리 아버지가 아저씨들 짐 지고 가서 안 왔다. 나는 동네 사람들이 피난 가길래 따라가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도로 돌아오는 길이다.” 이랬더니 “요놈의 새끼 빨갱이 첩자 아이가?” 그러더라고. 한 놈이 “쏴버려!” 그래. 그런데 그 옆에 있던 다른 놈이 “어이, 밤에 총소리 내지 말라고 그랬는데….” 이런 소리가 들리면서 인자 “일어나!” 하더라고. 손을 든 채로.
  바로 위에는 능선이고 아래가 논이야. 그 논 쪽으로 내려가라고 하더라고. 그래 손을 들고 내려갔는데 불이 반짝하더라고. 개머리판을 가지고 머리를 때려버린 거야. 거기서 한참을 누워 있었는가 봐. 등허리가 선선해지는 게 느껴지면서 눈이 떠지는데 별빛이 희미하게 보이더라고. 그런데 머리가 뽀개지는 거 같아. 간신히 일어나니까 머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더라고. 얼음 있는 데가 있어서 엉금엉금 기어가서 얼음을 깨고 손이랑 얼굴을 대충 씻고, 그래 손이 깨져 나가는 거 같았지. (지혈을 한답시고) 논흙을 긁어가지고 발랐는데, 따갑기만 하지 지혈이 됩니까? 우리 어릴 때는 그런 식으로 많이 했거든. 그리고 한참 있으니까 지혈이 되더라고.

 

195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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