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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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 한들신문
  • 승인 2023.06.2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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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인 정애주

어지간히 새순을 획득했다. 만 2년이 된 봄, 서사 밭 고사리와 아스파라거스는 생각보다 훨씬 훌륭했다. 튼실하고 수확량도 괜찮았고 맛은 일품이었다. 아직은 소비의 대부분이 주변 지인들이지만 내년은 수입을 위한 유통망도 알아볼까 내심 기대 중이다.
  주변 자투리의 땅에도 의도한 작물을 배치했다. 위쪽 어둑의 경계에는 땅두릅과 백지를 심거나 유도했고 밭의 왼쪽은 쑥이 자라도록 관리하려고 한다. 그 길따라의 경계는 산딸기와 억새 그리고 조팝나무들이 서로 버성기지 않으면 자유롭게 해 주려고 한다. 입구 왼쪽은 개암나무 3그루를 이식했고 입구 우측에는 조만간 제피나무 몇 그루를 옮겨 올 예정이다.
  그리고 하나 큰 변화는 울타리를 친 것이다. 지난 늦을 가을부터 겨울 초입에 멧돼지의 출현으로 아스파라거스의 두둑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아스파라거스를 먹지는 않았는데 파헤쳐진 뿌리가 제법 많았다. 마침 농작물 피해지원이 있었고 울타리 설치비용 중 절반을 지자체에서 충당한다고 하여 서둘러 신청했고 인정되어 지난달 완료되었다. 툭 터진 밭의 사방의 경관을 즐기다가 살짝 갇힌 느낌이 있어서 속상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익숙해지니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덕분에 반려견 마루는 그 공간에서만큼은 자유롭다. 그 녀석의 성에는 차지 않겠지만 나름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전용 단거리 코스가 마련된 셈이다.
  어제부터는 다시 풀을 베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수확의 시기를 지나 몸 불리는 날들이다. 푸른 잎들은 뜨거운 태양과 드나드는 바람 그리고 간간히 적시는 비와 함께 제 살을 찌우고 성장을 하는 시절이다. 이 틈에 나는 미루어 두었던 주변을 정리한다. 그중 으뜸이 방해꾼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바야흐로 풀베기이다. 제자리에 있지 않고 넘을 귀찮게 하고 훼방하는 녀석들을 솎아내고 잘라내고 뽑아내어 질서를 잡는다. 이 일을 마치면 묵힌 퇴비를 아스파라거스에 조금 주어 땅을 기름지게 해서 양분 섭취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아 스스로 대견하다. 일에 순서가 생기고 작업에 경중이 섰다. 농부 된 지 3년 차이고 만 2년이다. 
 4월 중순부터 고사리는 아침저녁으로 채취해서 밤에 씻어 삶았다. 그리고 밤새 아침까지 물에 담가 두어 독을 우려냈다. 아스파라거스는 주로 아침에 거두었다. 튼실한 녀석들이 자라기를 기다려 밑동을 잘랐다. 수확한 꾸러미를 들고 내려오다가 우선 만나는 마을 이웃들에게 나누었다. 우리 마을은 아스파라거스를 처음 보는 분들도 계셨다. 날 것의 맛은 땅콩과 흡사하고 굽거나 데치거나 한 맛은 그 식감이 즐겁다. 몇몇 마을 분들은 아스파라거스를 심어 실험도 하신다 했다. 앗싸! 성공이다. 아스파라거스로 작물을 정한 이유 중 하나가 마을 분들이 사과와 포도를 힘겨워하실 즈음 갈아타기에 수월한 작물이 아닐까 해서이다. 고사리도 그와 같은 이유다. 중국산 고사리보다 맛나고 공급이 수월한 작물이기를 바라서이기도 하지만 채취해서 삶아 말리는 품이 꽤 들어가다 보니 가성비가 좋지 않다고들 생각하시는 듯했다. 하지만 삶아 독을 우려내고 그대로 식재료로 쓰면 활용도도 식감도 탁월다. 나는 그렇게 말리는 공정 없이 마련한 고사리로 라면, 우동, 찌개, 조림, 야채 볶음, 각종 전은 물론 피자, 스파게티에도 넣어 요리한다. 점성이 살짝 있는 그 식감은 가히 매력적이다! 어느덧 큰돈을 벌지 않아도 될 어른들이 해 보암직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아참, 이를 위해 앞서 2월에 작업장을 마련했다. 따뜻한 물을 외부에서 쓰고 싶었다. 물론 비도 피하고 햇빛도 살짝 가리면서 전기를 넣어 끓이고 삶고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때때로 마당 카페로도 활용할 만한 협소 공간이다. 그래서 아스파라거스와 고사리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고 그곳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이것도 흐뭇하다. 다녀가신 분들은 모두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마을 어른 한 분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늘 쪽을 찌시는 분인데 얼마 전에 머리를 단정히 자르셨기에 여쭈었더니 조금 몸이 안 좋으셨다 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서사 밭으로 가던 이른 아침에 어른을 만났다. 내게 어디 가는지 물으시고 잘 다녀오라고 미소하셨는데 하루 지나 마을 방송으로 어른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믿기지 않았다. 호두나무 밑에서 풀을 긁어내시며 인사해 주셨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참 아름다웠다.
  언제가 언젠가... 나도 그렇게 얌전히 호미질하며 이웃들에게 잘 다녀오라 인사하고 이튿날 하늘나라 가면 좋겠다. 
  서사 밭에서 고사리와 아스파라거스를 훼방하는 풀들을 긁어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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