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엉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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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엉덩이
  • 한들신문
  • 승인 2023.08.2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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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영화 컷 출처:네이버
▲영화 컷 출처:네이버

영화<길버트 그레이프>를 보면, 남편의 자살로 충격을 받은 길버트(조니 뎁 역)의 어머니는 7년 동안 집 밖에 나오질 않아 초고도 비만이 된다. 지적 장애인 동생 어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와 반항적인 여동생, 뜻이 달라 늘 다투는 누나... 이 모든 비정상적인 가족을 돌봐야 하는 길버트 그레이프는, 동네 식료품점에서 점원으로 일한다.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던 그가 베키를 만남으로 희망의 조각들을 찾아간다. 어머니가 죽은 후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거대한 몸집 때문에 도저히 시체를 옮길 수가 없어 집까지 통째로 불태우는 장면은 길버트의 새로운 출발을 상징한다.

  각설하고, 애초 이야기하고자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제임스 딘이 주연한 영화<에덴의 동쪽>에도 드럼통보다 몸집이 큰 흑인이 나온다. 지극히 짧은 순간에 지나간 장면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영화의 스토리보다 그 장면이 더 강렬하게 떠오르곤 한다. 거대한 엉덩이를 흔들어 대며 웃던 그 이미지가...

  아무튼, 둘 다 영화 속 장면으로, 비대한 몸집의 미국인 모습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실제로 본 비만의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분류하면서 21세기 신종 전염병으로 규정했다. 고혈압, 당뇨, 흡연, 운동 부족과 함께 비만은, 5대 사망 위험 요인이 된다. 또 비만은 다른 병을 유발하고 정신적으로는 우울증을 야기하기도 한다. 비만은 개인 건강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비만의 책임이 의지가 약한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 등에 있다고 한다.

  지구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또 다른 한켠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살 때문에 다이어트를 한다고 난리다. 현대사회에는 실제로 굶어 죽는 사람의 숫자보다 비만으로 인해 빚어지는 갖가지 병으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한다. 그런데도 음식물 쓰레기들은 넘치고 넘쳐난다.

미국에 가서 또 하나 놀란 것은 쓰레기였다. 지구의 환경은 자기들이 다 지키는 것처럼, 약소국에 갖가지 경제적 제약을 가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쓰레기를 서슴없이 마구 아무렇게나 버리고 있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분량을... 그리고 그 쓰레기 더미 곁에 널브러진 노숙인와 마약쟁이들... 내가 본 다운타운의 모습은 거의 그랬다.

미국은 자기들이 갖고 있는 힘의 논리로 전 세계를 장악하고픈 욕망으로 들끓는, 거대한 몸집의 나라이다. 독재를 처단하고 악을 축출한다는 명분으로, 그 나라의 온 국민이 몇 년 먹고도 남을 액수의 폭탄을 불꽃놀이 하듯 무차별 융단 폭격했던 미국의 독단과 이기 그리고 그 위선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폭력적인지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소수와 약자는 보호 밖에 방치된 현상에서 드러났듯,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나라 미국은, 절대강자와 사회적 약자가 뒤엉켜 그 간극을 매우지 못한 채 더욱 벌어져 가는 모순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손에 있는 한 마리의 양까지 빼앗는 성경 속의 이야기는 비단 다윗 시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초거대 강국인 미국을 통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현실임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인구의 30% 정도가 비만이라고 한다. 이젠 우리 또한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갖가지 양태의 사회적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 같다.

  거룩한 청빈의 성자 프란체스코는 수도자의 집이 더 간소하고 가난하게 지어지기를 염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곳에 머물렀다. 우리 또한 절제되고 질박한 향기가 삶의 곳곳에 스며들게 살 수 있다면... 그리고 모자라고 비어있는 여백은 사람들과 나누고 베푸는 아름다운 관계로 채운다면, 삶이 더욱 윤택해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힘의 논리가 횡행하는 폭력과 행악이 반복되지 않게 될까?

  최첨단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비대해진 현실의 한복판에서, 문명의 이기를 향한 자연의 거센 반발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길버트 그레이프처럼 우리 삶을 감싸고 있는 작금의 집을 통째로 불태워 버리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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