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빌라 이야기 마흔세 번째]쫓아가지 마라!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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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이야기 마흔세 번째]쫓아가지 마라! (2편)
  • 한들신문
  • 승인 2021.03.2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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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어느 복지단체에서 주관한 캠프에 진행요원으로 참가했습니다. 캠프 시작에 앞서 한 가지 행동 지침을 들었습니다. “쫓아가지 마라!” 참가자가 뛰어가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으니 잡으려거나 쫓아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사자의 행동을 인정하라는 의미입니다. 월평빌라 문을 연 지 벌써 십삼 년입니다. 그사이 무디어지고 허술해진 곳을 살핍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잘못을 범합니다. 그렇게 되기 쉬운 현장이 복지시설입니다. 깨어 있으려면 말과 행동과 생각을 쉼 없이 다듬어야 하지만 몇 마디 말이라도 끄집어내서 다듬습니다. 1. “안 돼요. 하지 마세요.”, 2. 올바른 호칭.(1편 요약)

 

3. 똑똑, 노크

시설은 입주자 그 사람의 집입니다.” 그렇다면 노크는 기본입니다. 그 가구를 전담하는 직원은 노크 후 용무를 간단히 말하고 들어가도 되겠으나, 그 외 직원은 반드시 허락을 구하고 들어갑니다. 시설장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노크하지 않으면 입주자 그 사람의 집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직원회의에서 의자가 모자랐습니다. 한 직원이 입주자의 집에서 의자를 가져왔습니다. 노크하지 않고 허락도 구하지 않고요.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괜찮다? 아무도 없을 때 가져오면 절도인데? 입주자의 물건을 쓸 때는 반드시 허락을 구합니다. 빈집은 출입을 삼갑니다.

어느 집에 삼겹살을 구웠더니 그 집 앞에 직원 신발이 여럿 놓였습니다. 입주자의 집인데 초대받고 왔을까? 여럿이 같이 먹으면 맛있다고요? 사람이 북적이면 좋다고요? 요즘은 집들이하지 않죠. 친한 몇 사람만 불러서, 그마저도 밥은 식당에서 해결하고 집에서는 차나 간식 정도 대접합니다. 내 공간을 남에게 내주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입주자의 집은 예외일까요? 끼니마다 불쑥 찾아오는 걸 마냥 좋다고 해야 할지, 그저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입주자 집에 갈 때는 초대받아서 가고, 얻어먹었으면 다음에 대접할 요량으로 가야 합니다. 직원들로 북적이는 입주자의 집에 부모형제, 친구, 이웃, 교우, 직장 동료, 동아리 회원이 수시로 드나들며 삼겹살 구워 먹기 바랍니다.

 

4. 강압적인 말과 행동

이거 하세요, 그만 하세요, 하지 마세요, 안 됩니다, 앉아 계세요, 빨리 하세요강압적이고 구속하는 말. 강제로 일으켜 세운다, 강제로 앉힌다, 줄을 세운다, 바로 서게 한다, 눈을 맞추게 한다강압적이고 구속하는 행동. 특히, 눈을 맞추게 하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무지에서 비롯한 폭력입니다. 몸을 해치고 마음이 상합니다. 입주자가 다치고 직원도 다칩니다.

폭력 폭언 감금 갈취하는 시설 직원은 드뭅니다. 폭력이 인권의 핵심처럼 말하는데, 폭행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게 핵심이 아닙니다. 존대하며, 통제하지 않고, 입주자의 삶과 집을 사수하는 것이 기본이고 핵심입니다. 예와 성으로 대해야 합니다.

 

5. 몇 가지 더

입주자 대할 때 목소리를 차분하게 합니다. 톤을 좀 낮춥시다.

입주자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지 맙시다. 가능하면 가까이 가서 말합시다.

입주자에게 대답할 때, 입주자와 이야기할 때는 멈춰 서서 얼굴을 보고 말합니다. 말이 끝나기 전에 돌아서지 맙시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무시하지 않습니다. 여러 번 말해도 잘 들읍시다. 들을 형편이 안 되면 양해를 구합니다.

입주자가 말하지 못한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말하지 못해도 진지하게 묻고 설명합시다.

입주자와 의논할 때는 서서 하지 않습니다. 좋은 장소에서 차를 마시며 합니다. 그럴 상황이 아니면 앉아서 차분히 합시다.

입주자의 형편을 남에게 함부로 알리지 않습니다. 업무상 공유면 모를까, 그 외는 침묵합니다. 가족과 친구를 조심하십시오.

입주자의 흉허물을 우스갯거리 삼지 않습니다. 동료를 조심하십시오.

입주자와 단둘이 있을 때 더욱 조심합니다.

입주자의 집 안을 훔쳐보지 않습니다. 문이 열려 있어도, 맛있는 것을 해도 애써 외면합니다. 관심 있으면 노크합시다.

입주자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으면 그냥 두십시오. 지나가는 말로 상관·간섭하지 않습니다. 당사자는 벌써 여러 번입니다.

입주자의 잘잘못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시설 직원은 판사가 아닙니다. 필요하면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 차분히 설명합시다.

 

월평빌라 10년을 맞으며 몸과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몸부림합니다. 사람으로 보고 사람답게 도우려고 몸부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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