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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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언론
  • 한들신문
  • 승인 2021.04.1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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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소비자주권행동

오세훈 서울시장, 오늘첫날부터 능숙하게업무 착수”, 모 인터넷 언론사에서 2021.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다음 날 송고한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누구든 저 헤드라인을 보면 역시나 시장 경험이 있는 오세훈 씨가 공백 없이 서울시정을 잘 이끄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기사 송고시간을 확인해보니 위 기사는 투표 다음 날인 4.8. 새벽 5:05에 송고되었다. 참 부지런한 기자와 언론사다.

기사 송고시간을 꼼꼼히 챙긴 독자들로부터 몇 가지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당선 첫날 5시부터 출근해서 능숙하게 업무를 했구나, 역시 뽑길 잘 했군.

아무리 그래도 당선 첫날 새벽 5시에 출근했으려고, 기자가 잘못 입력했나?

역시 언론은 믿을 수가 없어, 당선 첫날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어딨어? 등등

선거철마다 어김없이 빠지지 않는 뉴스가 있다. “이번 선거 역시 정책 대결은 실종되고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만 남았습니다.” 어느 정당이든 거의 모든 후보는 출마와 동시에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정책을 발표한다. 동시에 상대 후보에 대한 검증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책은 부재하고 네거티브에 열중한다며 선거를 폄하하는 쪽은 정치권일까? 언론일까? 유권자일까? 아니면 이 모두일까?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점점 해소되었지만 시민 개개인이 후보 공약을 검증하기에도 역시나 무리가 있다. 그래서 시민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자신이 신뢰하는 언론에 검증기능을 위탁하고 그 검증 결과를 되도록이면 신뢰한다. 그런데 지난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언론이 수행한 정책 검증을 기억하는 유권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지난 서울시장선거에서 최대 이슈는 생태탕과 페라가모였으며, 부산시장선거의 최대 이슈는 LCT였다. 우리나라 첫째·둘째 도시의 수장을 뽑는 선거임에도 정책은 실종되었고 가십거리만 남았다. 물론 저 가십거리가 남게끔 한 플레이어들은 다양했다. 후보가 상대 후보를 비판하며 가십거리를 검증의 키워드로 사용했고, 정치 팟캐스트나 유사 언론이 이를 확대·재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이러한 기능을 얼마나 제대로 발휘했을까?

언론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사실을 전달하고, 진실을 파헤치며, 사회 주요 의제를 설정한다. 이를 지난 보궐선거에 대입해보면 첫째, 언론은 후보들이 공약한 정책을 사실 그대로 전달해야 했고 둘째, 후보들에게 덧씌워진 의혹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고 셋째, 서울과 부산이 당면한 주요 의제를 후보들에게 던지며 이에 대한 전망과 예상되는 문제 및 타개할 방법을 요구해야 했다. 지난 선거기간 동안 위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 언론사는 어디였던가?

보궐선거가 끝나고 저마다 선거결과의 원인을 찾기 바쁘다. 백가쟁명식의 논의가 인터넷 게시판을 빼곡히 메워나간다. 투표일로부터 역으로 어떤 일들이 발생했고 그것들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후보의 공약과 메시지는 어떠했는지, 공약의 수혜자와 피해자는 과연 자기 이익을 좇아 투표한 것이 맞는지, 선거에서 이긴 쪽이든 진 쪽이든 여러 검토를 거쳐 다음 선거를 대비하고자 한다.

언론은 어떠한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여권의 패배 원인으로 상정하고 유권자들, 특히 20·30 세대가 여권에 등 돌린 이유로 꼽는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의 LH 직원 비리폭로 사건이 이번 선거에서 큰 분수령이 되었던 만큼 부동산 문제가 선거의 중요 쟁점이 되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LH 직원의 비리가 한두 해 걸쳐 형성된 것이 아닌 오랜 해묵은 문제였다는 점, 그 전에 공기업 경영 효율화를 이유로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합병하려 하자 지금과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여 합병을 반대한 정치집단이 현 여권의 전신이었던 정당이라는 점, 어느 시절이든 20·30세대가 대도시에서 집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는 점, 부동산 문제는 단순히 주거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취업·지방분권·고령화·출산 등 모든 사회문제와 촘촘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알리는 언론은 아직 보질 못했다.

사실을 전달하고, 진실을 파헤치고, 의제를 설정하는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언론은 어디에 있을까? 언론은 선거에서 정책대결을 찾기 어렵다 하나, 오히려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을 찾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 위와 같은 반문을 언론에게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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