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들의 시선]‘화과원’을 가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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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들의 시선]‘화과원’을 가보셨나요?
  • 한들신문 논설위원회
  • 승인 2021.05.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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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목젖이 보이게 큰 소리로 합창하며 새들처럼 냇물처럼 날고 달려야 할우리 어린이의 5월도 코로나-19’로 인해 빼앗긴 봄이 되었다. (관련 기사 : 1)

잘 알다시피 어린이날은 일제 강점기에 소파 방정환을 비롯한 선각자들에 의해 19193·1 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고자 만들어졌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 대유행의 상황은 어린이를 키우는 우리 부모 세대에게는 일제 강점기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보다 더한 도전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혜와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지난 2월에 발행된 <시사저널> 700호 커버 스토리 제목은 ‘1년의 교육 공백 100년짜리 빚이 되다였다. 1년이 지난 코로나-19’ 상황에서 닫힌 교문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가는 기자와 연구자의 기사는 그야말로 실사구시행동하는 노력이었다. 전염병 대유행시대에 우리가 내딛는 한걸음들은 백척간두에서 한걸음이 될 수밖에 없다. 그 한걸음의 선택은 치열함에 힘입는다. ‘복지부동의 보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일제 식민지 지배의 한가운데에서도, 만해 한용운과 더불어 3·1운동 불교 대표로 참여한 백용성 선사(1864-1940)선농불교(禪農佛敎)’를 실천하기 위해 농장과 선원을 갖춘 화과원(華果院)’을 만들어 불교 혁신의 터로 삼았다.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화과원은 불교개혁, 역경과 저술, 선농불교, 민족운동 등의 행적이 있었던 사적지이다. 백용성이 1927년에 대각교의 지부조직, 불교 혁신의 대상처로 설립한 그곳에는 과수원과 선원이 있었다. 그래서 다수의 수행자와 농민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6·25전쟁 이전까지는 과수원과 선원이 유지되었지만, 전쟁의 와중에 황무지가 되었다. 1970년대부터 백용성의 문손들이 화과원의 복원을 위해서 노력하였고 최근에 법당과 요사채를 준공하는 등 사찰 기능을 일부 회복하였다. 20008월에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229로 지정됐다.

바로 그 화과원이 우리 거창과는 차로 30분도 걸리지 않는 지척이다. 함양군 백전면에 있는 백운산 산중, 백운리 산 50번지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그 흔적을 함양 백룡성 선사 화과원 유허지라는 이름의 사적지로 기념하고 있다.

우리가 가슴에 담아야 할 것은 깊은 산중의 뜻깊은 유허지가 아니라 그 이다. 일제 강점기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불교를 혁신하고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기 위한 불교 선사의 자세뿐만 아니라 민족의 시련 앞에 실천적으로 그것을 헤쳐나가려는 독립운동가로서 한 사람의 생각을 가슴에 새기자. 농토도 아닌 깊은 산중 계곡 비탈의 황무지와 산림을 개간하여 과수원을 일구며 불교 수행을 실천하려는 토대를 일궈냈다는 것,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는 것, 그 깨우침이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절실한 어려운 상황에서 어린이들에게 그 을 전하는 뜻깊은어린이날을 만들어 보자. ‘이 있는 곳에 이 있다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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