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사막 위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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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사막 위에서 2
  • 한들신문
  • 승인 2021.10.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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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실크로드 여행길에서 나는 밤기차를 타고 투루판을 향했다. 뉘엿뉘엿 석양 아래 핏빛으로 물든 사막이 창틀 안으로 들어왔다. 그 옛날 인적은 물론 하늘을 나는 날짐승의 흔적조차 없던 황량한 사막. 현장법사는 갈증 때문에 시시각각 죽음을 생각하며 물 대신 늙은 말의 간을 꺼내 먹어가며 횡단했고, 혜초 스님은 불법을 찾아 걸어가던 고행의 길이었다. 고통을 통해 더 깊은 삶의 진리를 얻을진대, 편리함에 익숙해진 우리 현대인은 옛날 사람들이 가졌던 道의 깊은 뜻에는 도저히 다가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달려도 사방은 자갈투성이의 사막뿐이었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먼지가 솟구치는지 코가 매캐하고 자갈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사막은 망망대해처럼 끝이 보이질 않고 길은 하늘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덧 창밖으로는 주먹만 한 별들이 출렁거리듯 반짝이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우리를 플랫폼에 내려놓은 기차는 다시 서쪽을 향해 출발했다. 새로운 삶의 현장을 찾아 떠나는 수많은 중국인들 또한 자신의 서방정토를 향해 달려갈 것이었다.

  투루판의 교하고성은 2세기부터 14세기까지 번영했던 교하국의 폐허이다. 사막 속에 남은 성곽 안에는 도로가 곧게 뻗어 있는데, 길가에 사원, 불탑, 불전, 관청 그리고 감옥과 민가의 흔적이 남아있다. 모두가 진흙 벽돌로 쌓은 건축물들이지만 세월의 풍파에 뭉개지고 흘러내렸다. 폐허미(廢墟美)의 마술에 걸린 나는 길을 따라 모롱이를 돌아설 때마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앨리스처럼 호기심과 설렘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2,00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과거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옛 성곽은 걸어가면 갈수록 점점 더 넓어지고 커지는 마술의 세계와 같았다. 
  햇빛 아래 붉게 타오르고 있는 황폐한 진흙더미의 고성에 서 있으니, 진시황이 인도했던 병마용의 장엄한 역사적 환상과는 또 다른, 황토 빛의 폐허가 펼쳐내는 아름다움과 소멸에 대한 허무함이 몰려들었다. 

  투루판에서 우루무치로 가는 길은 다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거쳐야 한다. 고비사막으로 들어섰다. 붉은 진흙땅이 이어지기도 하고 황금빛 모래사막이 펼쳐지기도 했으며, 뿌연 흙바람이 가득한 가운데 잿빛 물이 거세게 흐르는 시멘트 생산지를 가로지르기도 했다. 끝없는 사막 위에 수백 개의 거대한 풍차가 괴물처럼 서서 발전기를 돌리는 풍력발전소를 거치기도 했다. 때로는 그 삭막한 땅에 오아시스가 거짓말처럼 나타나, 양 떼를 몰고 가는 목동이 초지를 가로지르며 말을 달리고 하얀색 파오가 그림처럼 서 있었다. 온종일 그 누구 친구 한 사람도 없이 말과 양 떼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유목인의 고독을 생각하노라니, 그들 또한 득도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그 허허벌판 위에서 나는 한때 내 인생길에서 들어섰던 사막을 돌아보았다. 그 어디에도 오아시스는 없을 것 같던 절망감이 새삼 엄습해 가슴이 아렸다. 그러나 그때 그 사막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무너져 내린 폐허의 모래 깊숙이 숨겨진 내 삶의 족적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었다. 또한 헛되이 쫓았던 신기루를 목도하며 비루했던 나 자신의 욕망도 성찰할 수 있었다. 내가 서 있던 그 사막은, 내 인생의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가장 값진 과정이었던 것이다.

  가끔 실크로드의 아름다운 여행길이 꿈결처럼 떠오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이 과거의 저편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사막 속에서 만났던 만리장성의 잔해처럼 혹은 억만 겁 시간의 흔적처럼 사막의 기억들은 오롯이 남아있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사막 한가운데 서서 신기루를 쫓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황량한 사막 속에서 피어나는 선인장꽃처럼 강렬하고 찬란한 빛깔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면 내 기꺼이 그 사막 위에 서 있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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