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덕분에2-2
상태바
언니들 덕분에2-2
  • 한들신문
  • 승인 2022.08.30 1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장미 조합원

▶179호에 이어서

 

계절에 맞춰 농사를 짓고 때에 맞춰 자란 농작물을 먹는 일들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일이었는지를 깨달은 것은 이후 10여 년이 흐른 뒤였다. 거창에 돌아온 뒤 몸이 아프니 먹는 것에 신경 쓰게 됐고, 농업이나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연스레 로컬푸드와 건강하고 바른 먹거리에 관심을 갖게 될 즈음, 거창여성농민회 언니들을 알게 되었다.

  생‘업’으로 농사짓는 것만 해도 빠듯할 텐데, 당시 언니들은 사라져가는 토종종자를 찾아 그것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애쓰고 계셨다. 늘 마음으로 응원만 하다가, 작년 운 좋게 동네 친구들과 토종 벼 공동경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위천 서덕들에서 토종종자인 노인도를 전통방식으로 손 모내기와 피뽑기를 하고, 손 벼 베기로 수확을 했다. 어렸을 때, 마을 어르신들과 품앗이하며 논에서 일하고 계시던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를 돕는다고 동생이랑 볏단을 나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체험 수준이긴 하지만, 흙을 밟고 만지며 일하는 것이 중독성이 있어 올해는 토종 벼 공동경작에 더해 토종 콩 공동경작에 참여하고 있다. 거창 메주콩 2종과 타지역 메주콩 3종으로 싹을 틔워 땅에 심고, 잡초를 뽑아가며 꼬투리가 터질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7월 초 첫 번째 잡초 뽑기를 하던 날, 등이 굽은 채로 밭일하시던 할머니 모습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져 혼자 몰래 눈물을 훔쳤다. 
 
  콩을 수확하면 언니들이랑 메주를 쑤고 장을 담글 계획인데, 벌써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코끝이 시려오는 계절, 아랫방 가마솥에서 메주콩을 삶던 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을 입에 넣어주던 할머니, 메주를 띄우던 아랫방에서 나던 콤콤한 냄새, 마당 한편에 자리한 간장을 담그던 항아리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꺼이 감수해야 할 불편함들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 시대에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그렇고, 특히 토종종자와 전통을 지키려 애쓰는 거창여성농민회 언니들이 그렇다. 뭣이 중헌지 알고, 기꺼이 해내는 언니들 덕분에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가치들을 깨닫는다.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도, 10년 뒤에는 농사를 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혼자라면 어렵겠지만 언니들과 함께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면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