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덕분에 4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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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덕분에 4 (마지막)
  • 한들신문
  • 승인 2022.12.1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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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미 조합원

키가 150㎝도 안 됐던 할머니는 해마다 등이 굽을수록 점점 더 작아졌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내가 할머니보다 더 커졌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할머니의 몸에 대해 처음 생각했던 것 같다. 대가족 뒤치다꺼리를 하고, 계절마다 쉴 틈 없이 들일 밭일을 하면서, 자식 여덟을 낳고 길러내기에 할머니의 몸은 너무 작았다. 저 작은 몸으로 사람·곡식·동물 할 것 없이 무엇이든 잘 키우던 할머니가 신기했다. 새삼 대단하고 짠했다.

  둘째 고모는 할머니를 제일 많이 닮았다. 장날에 좋은 물건을 사거나 집에서 호박죽이나 곰탕을 끓일 때면 잔뜩 사고 만들어 엄마와 동생들,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여전히 고봉밥을 주고, 잘 먹는 반찬을 눈여겨보곤 만들어 보낸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지 못해 애가 닳는다. 고모는 여덟이나 되는 자식뿐만 아니라 한마을에 살던 조카들과 이웃집 아이들까지 보살피던 할머니를 닮았다. 고모의 하나뿐인 딸, 은수 언니는 고모를 닮았다.

  나의 삶이-우리의 삶이 언니들의 보살핌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나 역시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화분 하나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수시로 흙의 수분과 잎을 살피고, 때에 맞게 물을 주고 온도를 확인하며 환기시켜야 한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보살핀다는 것은 엄청난 애정과 관심, 배려를 필요로 한다.

  언니들을 보면서 배운다. 스스로를 능숙하게 돌볼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책임질 수 있어야 다른 무엇도·누군가도 보살필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먼저 나를 위할 줄 알아야 한다. 

  되도록 건강하게 끼니를 챙기고, 내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내가 지내는 공간을 청결히 하고, 예쁜 잠옷을 입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려 한다. 주중에는 좋아하는 수영 수업에 가고, 하루에 적어도 15분은 책을 읽는다. 매일 햇볕을 쬐고, 자주 웃으려고 노력한다. 좋아하는 친구들·언니들과 시간을 보내고, 종종 여행을 간다. 그리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책임지는 삶. 언니들 덕분에 혼자를 기르는 법을 익히고 있다.

#언니들_덕분에 
#혼자를_기르는_법 
#좋은_것을_주고_싶은_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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